[한마당-라동철] 영화 ‘작은 연못’
입력 2010-04-11 17:58
요즘 개봉을 앞둔 영화 한 편이 관심을 끈다. 6·25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발생했던 미군의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이다. 당시 그곳에서는 미군이 피난길에 나선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해 300여명이 숨졌다. 희생자들로서는 영문도 모른 채 창졸지간에 당한 비극이었다.
1994년 피해자의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가 출간되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 언론에 의해서다. 99년 AP통신이 비밀해제된 당시 미군 작전 문서와 참전 군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보도하면서 뒤늦게 큰 반향이 일었다.
‘작은 연못’은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최초의 영화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화를 결정하고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에 완성된 이 영화는 제작과 상영에 이르는 과정이 특이하다. 상업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이 주도했지만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다. 수익은 애초 관심 밖이었다. ‘노근리 사건’를 조명함으로써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게 목적이었다. 제작사인 노근리프로덕션은 그래서 오직 ‘작은 연못’이란 영화만을 제작하기 위한 유한회사로 설립됐다.
문성근 송강호 문소리 강신일 이대연 고(故) 박광정 등 142명의 배우들이 영화의 취지에 공감해 앞다퉈 노 개런티(무보수)로 출연했다. 229명의 스태프들도 기꺼이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며 제작에 참여했고, 컴퓨터그래픽 업체나 장비 업체 등 현물로 도움을 준 곳도 많다고 한다.
극장 상영용 필름 제작 비용을 시민들의 모금으로 마련한 것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달 22일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된 필름 구매 캠페인에는 시사회 관객들을 중심으로 3700여명이 동참했다. 이 영화에 대한 영화인들과 일반 시민들의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노근리프로덕션의 이우정 대표는 “이 영화는 반미 영화가 아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미군들도 오랫동안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도 역시 전쟁의 피해자였다”고 밝혔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게 아니라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는 전쟁 자체를 고발하려 했다는 것이다. 오는 15일 전국에서 동시 상영되는 ‘작은 연못’이 제작자들의 바람처럼 반전과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라동철 차장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