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비만치료 ‘사치’ 아닌 ‘생존’
입력 2010-04-11 18:11
임영희(26·가명)씨는 키 163㎝에 몸무게가 무려 125㎏으로, 체질량 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47이 넘는 초고도 비만이다. 표준 체중보다 60㎏ 이상 더 나가는 그녀는 번번이 취업에 실패, 경제적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런 임씨에게 전문적인 비만 치료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
저소득층의 비만 문제가 심각해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86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비만은 소득 및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빈번하게 나타났다. 비만 기준이 되는 BMI 25 이상 비만인 비율은 소득 수준이 ‘하’로 가장 낮은 집단에서 32.8%로 가장 높았다. 또 초등학교 졸업 이하인 집단의 38.4%가 비만인 것으로 나타나 다른 학력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는 “저소득층이 주로 접하는 라면 햄버거 등 값싼 음식 중에는 비만을 초래하는 것들이 다수 있는 반면 가격이 다소 비싼 과일 야채 등은 접근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또 “고도비만인 경우 일반적인 식사 조절과 운동으로는 개선되기 힘들고 전문의와의 상담 및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비용 등 문제로 비만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개선이 더욱 힘들어진다”고 덧붙였다. 특히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고도비만 환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약물이나 잘못된 다이어트 방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 이에 따른 부작용에도 그대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비만은 또 취업이나 사회생활에서 불이익과 차별을 가져다 줘, 치료를 더욱 어렵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미국 예일대 레베카 풀 박사팀이 25∼75세 미국인 22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BMI 35 이상 심각한 비만인 가운데 40%가 사회적 차별을 받은 적이 있으며 60%는 취업과 승진 때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실제로 비만으로 내원하는 환자들 상당수가 취업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한다”면서 “사람 관계에서의 실패가 가중될수록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가 커져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돼 사회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동양인의 경우 BMI 25 이상부터 비만에 해당되며, 30이 넘으면 고도비만, 40 이상이면 초고도 비만으로 판정된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2008년 건강검진 자료(988만명) 분석에 따르면 국내 고도비만인은 45만명, 초고도 비만인은 2만3500명이 있으며 상당수가 저소득층에 해당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도비만은 신체 및 대사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인 식이, 운동 요법만으로는 개선이 어렵고 약물 치료 효과 또한 더디다. 때문에 위 우회술이나 랩밴드 수술 등 비만 수술 치료가 필수적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비만 수술은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우리나라는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저소득층은 치료를 결심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올초 고도비만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몇 개월째 심사가 계류돼 있다. 이 개정안은 BMI 35 이상이면서 2가지 이상 질환을 동반하는 고도비만 환자가 수술할 경우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이 부담하는 비만 수술 비용은 1000만원대에서 160만원선으로 뚝 떨어진다.
대한비만학회 박혜순(서울아산병원 교수)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아직 고도비만에 대한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해 비만 치료가 가장 시급한 계층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고도비만 수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언젠가는 모든 비만 환자 치료에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건강보험 재정 상태를 고려한다면 중증도의 심각한 고도비만 환자를 우선 (건강보험) 급여화하고 비용 평가를 통해 점차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