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이 부른다… 이왈종 개인전 4월 27일까지
입력 2010-04-11 18:04
1990년, 이왈종(65) 화백은 20년 간의 대학교수 생활을 버리고 제주도 서귀포로 훌쩍 떠났다. 앞에는 사시사철 바다가 보이고 봄이면 마당에 매화가 피는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매달렸다. 세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바다의 자유를 얻고 생활의 중도(中道)를 표방한 자신만의 삶을 구가했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작품의 변화도 적잖이 있었다. 화사한 꽃이 피어 있는 나무 밑에는 나지막한 집이 자리 잡고 있고 집안에서는 사람들이 TV를 보고 있다. 하늘에서는 물고기와 새가 함께 날아다니고 한쪽에선 골프채를 든 사람이 스윙하고 있다. 서귀포의 풍경을 배경으로 자신의 일상을 밝은 색으로 친근하게 그린 ‘생활의 중도’ 연작으로 인기를 끌었다.
아무 욕심도 없이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삶의 모습을 관람객에게 제시하는 이 화백의 개인전이 1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린다. 전시를 앞두고 만난 작가는 “제 작업의 주제인 중도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안빈낙도라는 게 다 마음속에 있다는 얘기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색을 칠하는 것뿐만 아니라 칠한 색을 긁어내고 다시 표면을 입히는 과정을 거쳐 두터운 마티에르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는 세상의 욕망이나 허황된 권위도 찾아볼 수 없다. 천진난만한 작품의 이미지는 서귀포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단순 무모한 것이었는지 깨달으면서 마음을 달래고, 고된 육체 노동을 강행한 대가로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 외에도 종이로 부조를 만들거나 목재를 직접 자르고 파내서 채색한 목조와 도자기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 테라코타로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칠한 40㎝ 내외 높이의 향로에는 꽃과 호랑이, 새, 골프치는 사람, 그리고 춘화의 한 장면까지 그의 그림 속 도상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향로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중도) 자체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 갈등도 많고 번잡하기도 하지요. 그런 중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쁜 짓도 덜하게 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는 지금까지 평면 작업은 많이 해왔으니 앞으로는 향로 작업에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의 그림은 격의없는 색의 운영과 형태, 여러 시점이 뒤섞여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화면, 근심과 불안이 전혀 없는 편안한 이웃의 일상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자신의 감성을 충실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은 보는이로 하여금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한다. 보잘 것 없는 일상을 환상의 세계로 탈바꿈시키는 그림이다.
주말이면 골프를 즐기는 이 화백의 골프 그림은 골프장 건물 로비 등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귀포 핀크스 골프장의 하우스 로비에도 ‘생활 속의 중도’ ‘제주 남산 지도’ 등 작품이 걸려 있다. 이곳 작품은 김수현 극본의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 화면으로 자주 등장해 유명세를 타고 있기도 하다(02-732-3558).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