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명숙 무죄’ 검찰 체면 말이 아니다

입력 2010-04-09 17:52

법원이 어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짧은 시간에 돈 봉투를 처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곽 전 사장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기억과 다른 진술을 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유죄 입증을 장담하던 검찰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됐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 수수 여부다. 뇌물수수는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는 일이니 만큼 물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다. 이 사건 역시 공소사실과 맞아떨어지는 금융자료 등 증거가 불충분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누가 봐도 신빙성을 의심할 곽 전 사장 진술에만 의존해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한 전 총리는 제1 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총리를 역임했다. 그런 한 전 총리를 아무런 물증 없이 기소한 것은 ‘짜맞추기 수사’ ‘표적수사’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부실한 수사가 화근이었다. 곽 전 사장 횡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건주의 유혹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무엇보다 검찰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곽 전 사장 진술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는 처음에 10만 달러를 줬다고 했다가 조서를 작성할 때는 3만 달러로 정정했다. 그러다 돈 준 사실을 부인했다가 5만 달러로 말을 바꿨다. 이런 오락가락 진술로 한 전 총리의 유죄를 입증하려 했다니 검찰이 순진한 건지, 무능한 건지 모르겠다. 검찰이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소장 내용을 변경할 때 알아봤다.

검찰의 수사 태도 또한 비판 받아 마땅하다. 오죽하면 재판부가 “곽씨에 대한 검찰 조사기간이 진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을까. 그뿐인가. 재판이 검찰에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자 형사소송법 절차를 어겨가며 증인 신문을 하다 재판부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선고공판 하루 전날에는 한 전 총리가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혐의가 있으면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마저 무죄로 판명날 경우 ‘정치검찰’임을 자인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