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교회 개척기] 성지순례지서 가져온 포도주 성만찬 때 모자라 국내산 섞어
입력 2010-04-09 21:42
김진호 감독(도봉감리교회 원로)
지금부터 35년 전, 정릉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을 때 나는 성지순례를 떠났다. 그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기에 큰 기대와 설렘 속에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일정 중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던 가나 동네를 순례했다. 나는 그곳에서 생산된 포도주 3병을 구입해 가져왔다.
온 성도들은 성지순례에 다녀온 담임목사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큰 은혜를 받고 있었다. 나는 가나 동네에서 친히 가져온 포도주로 오늘 주일 저녁에 성만찬 예식을 거행하겠다고 광고했다.
그 당시 정릉교회는 주일 낮엔 500명 정도 모였고, 주일 저녁엔 보통 150명 정도 모였는데 그날 저녁엔 400여명의 성도들이 몰려왔다. 성만찬에 떡은 넉넉했지만 포도주가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포도주가 모자랐기에 중도에 성만찬을 끝내야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성만찬 예식은 진행 중이었고 성도들은 계속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다급한 심정으로 뒤에 앉아 있는 아내를 불러 속히 수퍼마켓에 가서 국산 포도주 몇 병을 사오라고 말해 놓고는 성찬 예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성도들은 귀한 포도주를 마시려면 이토록 많은 찬송을 불러야 되는 줄로 알고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성찬식에 참예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가나 동네에서 가져온 포도주와 아내가 사온 국산 포도주를 기도실에서 섞어서 나름대로 성찬 예식을 무사히 마치게 됐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어떤 성도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성도들에게 이 포도주가 국산 포도주를 섞은 것이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미안한 생각으로 성만찬 예식을 간신히 마쳤다.
그런데 그날 예배 후 어떤 집사님이 이렇게 간증하는 것이었다. “허리병이 있었는데 성지순례에서 가지고 온 포도주로 성찬을 받기 위해 간신히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의 포도주를 마셨더니 아픈 허리병이 깨끗이 고쳐졌습니다.” 나는 그때 하나님은 인간의 부족함을 통해서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정릉감리교회를 떠났으나 지금까지도 그때 있었던 가나 동네에서 구입한 이스라엘산 포도주가 모자라 국산 포도주와 섞어 성찬예식을 거행했던 목회의 비밀사건을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이 내용을 보고서야 그때 그 성만찬 예식을 생각할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차마 그때는 고백하지 못했던 사과를 이 지면을 빌어서나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