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디아스포라의 삶… 구효서 장편 ‘랩소디 인 베를린’ 펴내
입력 2010-04-09 17:53
소설가 구효서(53·사진)가 장편 ‘랩소디 인 베를린’(문학에디션 뿔)을 펴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문학웹진 뿔’에 연재했던 작품. 중세의 사랑과 현대의 사랑을 병치시키면서 ‘경계인’들의 슬픈 디아스포라를 아우른다.
이야기는 예순일곱의 일본 여성 하나코가 40여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첫사랑 야마가오 겐타로의 행적을 좇아 독일로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겐타로가 최근 독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다이어리에 ‘내가 늘 찾던, 평생 가 닿고자 했던 곳이 하나코였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겐타로는 ‘김상호’라는 이름을 가진 재일 한국인 2세로 하나코와는 연인 사이였다. 그러나 재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하나코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는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서 그는 ‘토마스’라는 이름의 음악가로 살았는데 그곳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은 힌터마이어라는 인물이 18세기 독일에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고 그의 생애를 추적한다.
음악가였던 힌터마이어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갔다 유럽에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 포로의 후손이었다. 힌터마이어에 관한 더 상세한 자료를 찾아 평양에 갔던 그는 이 일로 남한 당국에 체포돼 17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는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김상호였고, 겐타로였고, 토마스였지만 그 어느 것에도 속할 수 없었던 존재였던 셈이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토마스는 한국말 몰라요. 일본에서 살았고 독일에서 살았죠.…살고 싶은 곳에서 살지 못하는 거죠.…음울한 운명을 불치의 통증처럼 안고 사는 사람들. 물론 그들 잘못은 아니죠.”(206∼207쪽)
소설은 겐타로와 힌터마이어의 삶을 액자소설 형식으로 풀어내면서 18세기 말 독일과 평양, 21세기의 베를린과 일본, 한국 등을 오간다. 정치적 억압과 유랑의 역경을 열정으로 부딪혀낸 두 음악가의 삶을 풀어내며 작가는 물기 어린 연애 소설을, 예술가 소설을, 그리고 한국 소설에서는 소외되었던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 작가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뿌리의식은 스스로 발현한다기보다 다른 국가와 민족의 차별에 의해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