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입력 2010-04-08 18:48
오늘은 토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토론이 일상화된 것은 항간에 뜨끈뜨끈하게 회자되는 사회적 사건을 놓고 각 분야 전문인들이 나와 열띤 논쟁을 벌이는 TV토론 프로그램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웹상에서는 댓글 달기의 형태로 한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형식의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 요즘엔 인문사회학을 전공하려는 중고등학생들이 대학입시에서의 가산점을 염두에 두고 경쟁하듯 각종 토론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토론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풀고, 혼자 풀지 못한 문제는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해가는 공부 방식인 아포리아에서 시작되었고, 그 방식이 로마시대로 이어져 의회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면서 서양에서의 토론문화가 탄탄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토론이란 모든 것을 양극으로 이원화해 생각하기 좋아하는 서양적 사고방식에서 온 것이다. 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어 놓는 단계를 토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토론은 모아진 여러 의견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대립적 구도로 나뉘어 생각을 몰고 나가는 방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토론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으며,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각각 개진하게 된다. 즉 ‘정-반-합’이라고 하는 변증법적 논리가 적용되어야 토론의 형식이 갖추어지는 셈이다.
나는 평소에 형식을 일일이 따지는 편은 아닌데, 언젠가 웹상에서 벌어진 정신없는 토론을 읽고부터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그날 웹 토론의 주제는 인문학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고, 초반부는 사회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중립적이고 진지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문학이 개별로 나열된 정보들을 커다란 이야기의 틀로 인식하게 하므로 꼭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써놓았다. 그러자 바로 이어 철학이야말로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세상의 수많은 차이들을 이해하는 데 필수라고 주장했다.
“문학이 더 중요한지, 철학이 더 중요한지 이 자리에서 판가름해야 한다면, 그것은 마치 우리 보고 자장면이 더 맛있는지 짬뽕이 더 맛있는지 반드시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자장면과 짬뽕이라는 비유가 등장하면서 그 후에 이어지는 댓글은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말았다. “그 말 들으니 배가 고픈데요. 옛날식 자장면 기막히게 잘하는 곳 알지요.” “전 매운 굴짬뽕 생각이 간절한데요.”
어느새 나도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토론수업을 시도하면서, 토론은 무엇보다 의견의 형성이 동일한 지평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또 잔소리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날 웹 토론을 끝까지 읽지 않았는데,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갑자기 궁금하다. 자장면과 짬뽕이 각각 정과 반이라면, 토론을 통해 얻어지는 합은 ‘짬짜면’이었을까.
이주은 성신여대 미술교육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