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제2 혁명’… 부패 항거 5년전 ‘레몬혁명’ 복사판
입력 2010-04-08 21:28
데자뷰(deja vu)처럼 진행됐다.
시위 이틀 만에 키르기스스탄의 반정부 세력이 과도정부를 구성한 과정은 2005년 레몬혁명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으로 반정부 시위는 시작됐다. 그는 러시아로 도피했고 총리는 사임했다. 5년 뒤 레몬혁명을 주도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도 부정·부패와 경제난, 언론 탄압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로 수도에서 쫓겨났다.
◇사태수습 노력 및 시위 진정=반정부 세력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야당인 아크-숨카르의 지도자 테미르 사리예프는 로자 오툰바예바 사회민주당(SDP) 대표의 지도 아래 국민의 신뢰를 받는 새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를 해산한 과도정부는 곧 입법 제정에 나선다. 또 다니야르 우제노프 총리가 사임 성명서에 서명해 각료 전원이 사임할 것으로 보인다.
오툰바예바 대표는 “사상자가 속출하고 많은 게 파괴돼 안타깝다”면서 “긴장된 상황이지만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바키예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잘랄아바트 지역으로 도피해 세력 규합을 도모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의식한 듯 오툰바예바 대표는 “바키예프 대통령과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요사태는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수도 비슈케크에는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았고 차량 소통도 눈에 띄게 줄었다. 군 관계자도 “무력 진압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러시아·중국은 사태 주시=러시아와 미국, 중국 등은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인 키르기스의 정정불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키르기스에 고액의 임대료를 내고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대(對)테러전을 진행 중인 미국은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친(親)러시아 성향인 야당 지도자들이 미군의 마나스 기지 임대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기지를 폐쇄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오툰바예바는 마나스 기지를 계속 열어둘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반정부 시위 개입 의혹설을 부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러시아와는 관련 없는 일이며 개인적으로 이번 사태에 깜짝 놀랐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과도정부가 러시아를 이용하려는 걸 피하려는 사전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막아주던 키르기스에서 비상사태가 빨리 진정되길 바라는 입장이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