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재산, 헌법에 의해 보호될 수 없어”

입력 2010-04-08 18:42

친일 청산과 재산권 보호라는 대명제가 헌법재판소에서 부딪쳤다. 헌재는 8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 자작(子爵)을 지낸 민영휘 등 친일인사 6명으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은 후손들과 이를 넘겨받은 토지 소유주 64명은 “법을 만들기 전에 일어난 일에 적용하는 소급입법을 통해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 측은 “해당 법률은 친일파 후손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일 뿐 ‘정의’ ‘민족의 정기’ 등을 구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은 또 “40여년간 이뤄진 경제활동으로 취득한 부동산이 모두 친일 행위의 대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당한 대가로 취득한 부동산이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측 대리인은 “친일 재산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밝힌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보호될 수 없다”고 맞섰다.

나라를 팔아넘긴 반역행위의 대가로 얻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헌법의 자기파괴에 해당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위원회 측은 특히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공익적 중대성은 친일재산의 신뢰보호라는 사익보다 우월하다”며 “친일행위에 대한 과거청산은 헌법적인 의무로서 실현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희옥 재판관은 “해방 후 특별한 조치를 못해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친일 잔재를) 방치하는 것이 민족의 정기와 정의에 부합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취득시점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입증 자료를 구할 수 없다”며 “친일 행위의 대가가 아닌 정당한 노력에 의해 벌어들인 재산임에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에 귀속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답했다.

이공현 재판관은 “청구인들은 해당 재산을 (조선시대의) 봉록과 하사로 취득했다고 주장하는데 헌법 어디에도 대한민국이 조선을 계승했다는 표현은 없다”며 “왕조 시대에 하사받은 토지의 소유권도 인정해 달라는 취지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청구인 측은 “민법상 소유권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2005년 위원회로부터 토지 국가귀속 결정을 받은 뒤 행정소송 진행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