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오종석] 김정일과 언론플레이
입력 2010-04-08 21:13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월 말∼4월 초 중국 방문설이 결국 무위로 끝났다. 김 위원장 방중설은 지난해부터 나왔다. 북한의 절박한 상황과 북·중 관계, 국제사회 분위기의 흐름상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못지않게 김 위원장의 동향에 관심이 많은 일본 언론에서 주로 많이 제기됐다. 대부분 추측성 보도에 불과했다.
김 위원장 방중 얘기는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항상 신중한 태도였다. 일본 언론이 자꾸 왜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번엔 달랐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양치기 소년’이 된 느낌이다. 정부 핵심관계자는 지난달 31일 김 위원장 방중 임박설을 흘렸다. 관련 첩보를 종합하면 1∼2일 내에 방중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것이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실명으로 이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 2일 평양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3일 류훙차이(劉洪才) 신임 주 북한 중국대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연회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단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청와대와 관련 부처에선 이후에도 계속 김 위원장 방중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예정돼 있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 인사들의 외부 일정이 줄줄이 잡혀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당장 방중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청와대와 유관 부처에선 방중 가능성이 있어 예의주시한다고 밝혔지, 확실히 간다고 말하진 않았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언론에선 정부 핵심관계자들의 발언 비중을 고려해 대서특필됐다. 이런 상황에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날짜까지 지정하며 “25일쯤 방중 가능성이 있다”고 또 전망했다.
돌이켜보면 참 희한한 일이다. 그동안 그토록 신중했던 정부가 외교적 관례까지 무시하면서 이번엔 왜 그렇게 적극적이었는지. 김 위원장이 방중했던 2006년 1월. 당시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이 확인을 요청하자 “관례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설령 알고 있어도 당사자인 북한과 중국이 발표하지 않는데, 한국이 나설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중국은 최근 김 위원장 방중에 대해 시종일관 “그런 방면의 정보를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과 베이징의 온도 차도 느껴졌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서울에서 김 위원장 방중 임박설이 제기되자 처음엔 특별한 움직임이 포착된 게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입을 맞춘 듯 갑자기 움직임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정황상으로 베이징이 훨씬 급박해야하는데 서울보다는 늘 차분했다.
김 위원장 방중은 우리에게도 나쁠 게 없다.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고, 중단된 북핵 6자회담 재개에도 일조할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김 위원장의 방중에 걸림돌이 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김 위원장 방중 임박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첩보로 선발대가 베이징에 도착한 사실을 꼽았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동선과 밀접한 것으로 가장 보안이 필요한 부분이 드러난 셈이다. 진정한 선발대로서의 의미가 없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공개보다는 첩보로서 가치가 훨씬 더 클 것이란 생각이다. 김 위원장 방중설이 제기되면서 방중할 경우 특별열차가 통과할 북한 접경지역 단둥(丹東)엔 전 세계 언론들이 몰려들었다. 정부 당국자는 “일정이 공개되면서 보안문제 등 때문에 방중이 미뤄진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고와 무관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처음 김 위원장 방중설이 제기된 시점은 공교롭게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이 각종 의혹과 문제점을 제기하며, 정부를 정조준하기 시작했을 때다. 언론플레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베이징=오종석 기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