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다 ‘만화계 박지성’ 꿈꾸며… 국내 작가들 일본 진출 10년

입력 2010-04-08 18:01


무림 패권을 놓고 정파(正派)와 사파(邪派)가 대립하던 혼돈의 시대. 사파 무림지존 천마신군의 제자 한비광은 뛰어난 경공술을 지닌 무술 천재지만 싸움을 싫어해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는데….

무협만화의 전형을 깨뜨린 캐릭터 한비광은 1994년 5월 만화잡지 ‘영챔프’에서 정파 여검객 담화린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후 시작된 그의 좌충우돌 무림기행을 만화 ‘열혈강호’는 16년째 그리고 있다.

이 작품으로 단행본 51권을 펴낸 인기 만화가 양재현(40)씨가 지난달 인터넷 팬카페에 장문을 남겼다. 열혈강호 업데이트가 부진하다는 지적에 근황을 알린 것이다(영챔프는 지난해 온라인 잡지로 전환해 격주로 연재물을 업데이트해 왔다. 올 2월 5일자에 열혈강호가 실리지 못했다).

‘한국 만화판… 힘이 나지 않습니다. 전에는 노력하면 (단행본) 권당 10만부를 팔 수 있었지만 지금은 3만5000부가 최고네요. 그것도 열혈강호 기록이고 다른 만화는 1만부도 안 팔리는 시장입니다.’

출판만화 작가의 수입은 인세와 원고료다. 양씨는 이를 공개했다.

‘국내 연재만화는 1년에 세 권쯤 단행본으로 나옵니다. 권당 평균 4000부 팔립니다. 인세는 책값 4000원의 10%, 400원입니다. 4000부×400원=160만원. 이중 3분의 1은 스토리작가 몫입니다.’

원고료는 단행본으로 묶이기 전 잡지에 연재할 때 받는 돈이다. ‘보통 작가들 원고료가 페이지당 4만5000∼5만원, 24페이지씩 월 2회 마감하니 한 달에 216만∼240만원. 언뜻 괜찮아 보이지만 어시스턴트 2∼3명 고용하고 화실 유지비로 쓰면 남는 게 없습니다.’

다음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현실이 머리를 쥐고 흔드니 좋은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동료들은 일본에 가라고도 하고, 한국에 남아 자존심을 지키라고도 합니다. 같이 연재하던 작가들이 일본에서 결실 이루는 걸 보면… 마음잡기가 힘듭니다.’

“일본… 돌아올 수 없는 길”

종족 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던 고대 한반도. 죽지 않는 운명을 타고나 전쟁 병기로 살아야 했던 슬픈 전사의 이야기 ‘천추’. 유럽에 수출돼 한국 만화 붐을 일으키기도 했던 이 작품은 2000∼2004년 단행본 15권으로 1부를 마무리한 뒤 아직 2부가 나오지 않고 있다.

2부를 준비하던 만화가 김병진(35)씨에게 2004년 일본 출판사 스퀘어에닉스에서 비디오게임 ‘파이널 판타지’를 만화로 그리자고 제안해 왔다. 스퀘어에닉스 편집부와 이메일 또는 전화로 회의를 진행하며 준비한 ‘파이널 판타지’ 연재는 출판사 게임 담당 부서와의 이견 등 여러 이유로 3회 만에 중단됐다.

-‘천추’ 2부를 다시 그릴 수 있지 않았나요?

“파이널 판타지 중단되고 10개월쯤 쉬었는데 통장 잔액이 없는 거예요. 한국에서 천추 1부로 4년간 인기가 있었는데… 충격이 컸죠. 다시 4∼5년 작업해 2부를 그린다 해도 그 다음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요?

“일본 잡지에 ‘자칼’을 2년쯤 연재하고 단행본을 일곱 권 냈어요. 천추 열다섯 권보다 수입이 훨씬 많더군요. 한국과 일본 만화가 수입은 환율만큼 차이난다고 보면 돼요. 일본이 10배쯤 많죠.”

-양쪽에서 모두 작품을 냈는데 다른 점이 뭔가요?

“일본에 작품을 내면 국내에서처럼 독자 반응을 피부로 느끼기 어려워요. 일을 하청 받는다는 느낌도 좀 들고… 하지만 시장 규모가 크고, 그만큼 기회도 일본이 훨씬 많아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선 셈이죠.”

‘공장 만화’의 몰락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조직위원회 박성식 사업국장은 1990년대 초 만화잡지 ‘소년챔프’(영챔프 자매지) 편집자 시절 한 잡지에 실린 양씨의 삽화를 보고 찾아가 스카우트했다. 양씨를 만화가로 데뷔시켰던 그도 양씨가 팬카페에 올린 글을 읽었다.

“1980대 시작된 한국 만화 중흥기가 90년대 중반 절정에 이릅니다. 양재현 작가는 그 시기에 데뷔해 성공했어요. 이후 외환위기 겪고 휴대전화 인터넷 보급되면서 출판만화 시장이 급속히 위축됐는데, 아직 웹툰 시장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상태라 작가들이 힘들 수밖에 없죠.”

한국 만화시장은 잡지에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파는 일본식이다. 다른 점은 일본 소비자는 만화를 사서 보고, 우린 주로 빌려 본다는 것. 돈 되는 건 단행본인데 일본 시스템의 알맹이가 빠진 셈이다.

“원로작가들 얘기로는 ‘엄마 찾아 삼만리’가 히트한 50년대엔 만화를 서점에서 팔았대요. 그런데 한 작품이 수십 권씩 되니까 서점 주인들이 꽂을 자리 없다고 입고를 거부하면서 대본소가 생겼답니다. 물론 만화 경시 풍조나 경제적 이유가 더 컸겠죠. ‘책 살 돈도 없는데 만화를 사다니’ 하는.”

그래도 80, 90년대엔 가장 저렴한 오락이라 장사가 됐다. 대량생산된 대본소 만화는 ‘공장만화’ ‘밀어내기 만화’란 비판 속에도 만화갑부를 탄생시켰고, 잡지도 20개 이상 발행됐다. 만화대여점 수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2만개에 육박하며 최고조에 달한다. 수많은 실직자들에게 가장 손쉬운 창업거리였다.

“대여점 때문에 한국 만화 질이 크게 떨어졌어요. 대본소 전문 출판사들이 빨리빨리 찍어내려고 검증 안 된 작가를 마구 발탁했죠. 원고 심부름하던 친구가 어느 날 작가라고 명함 찍고 그랬어요.”

현재 대여점은 2000개 남짓. 작품당 대여점용 2만부는 기본으로 찍던 시장이 10분의 1로 줄었다. 전체 만화시장 규모는 4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10조원이라던 시장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어요. 그래도 훨씬 독자가 많고, 만화를 사 보는 시장이라 한국 작가들이 몰려가는 거죠. 일본 메이저 잡지는 신인작가 원고료가 페이지당 1만엔(약 12만원)부터 시작해요.”

만화가 데뷔도 아예 일본서

한국 만화가들이 일본에 본격 진출한 지 대략 10년이 됐다. 70년대 ‘고바우영감’(김성환), 80년대 ‘임꺽정’(방학기), 90년대 ‘윤희’(황미나)가 일본에서 출간됐지만 국내 발표작을 번역해 펴내는 형태였다. 일본시장에 작심하고 뛰어든 첫 만화가는 양경일(그림) 윤인완(글) 콤비다.

미스터리 액션 만화 ‘아일랜드’를 그렸던 두 사람은 98년 작품을 일어로 번역하고 에이전트를 구해 일본 출판사를 찾아 나섰다. 2001년부터 월간 ‘선데이 제넥스’에 연재한 장편 ‘신(新)암행어사’는 단행본이 150만부 팔리고 영화와 TV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이후 한국 만화가의 일본 진출이 이어져 현재 50명 이상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며 작품을 그려 보내는 이가 많고 양쪽에 모두 화실을 두기도 한다. 대부분 한국시장에서 활동하다 한계를 느껴 일본행을 택한 경우. 최근엔 아예 데뷔를 일본에서 하는 만화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간의 육체를 강탈하려 침략한 외계인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 ‘블러디 플라넷’. 지난해 일본 인터넷 만화잡지 ‘간간 온라인’에 이 단편을 발표한 김진태(31)씨는 한국에서 작품을 낸 적이 없다.

대학 시절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졸업 후 2년간 만화학원에 다녔다. 2007년 학원 주선으로 견학한 일본 만화출판사 부편집장이 그의 그림을 호평했다고 한다. 1년간 작품을 다듬어 보냈더니 “함께 일해보자”는 답이 왔다. 같은 잡지에 실릴 세 번째 단편을 그리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 때 일본 만화 ‘3×3EYES’를 보면서 만화에 빠졌어요. 만화 지망생 사이엔 영화배우가 미국 할리우드 동경하듯 일본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있어요. 만화 강국이니까. 학원 친구 2∼3명도 일본에서 작품을 냈고, 한 명은 아예 일본으로 만화 유학을 떠나 데뷔했어요.”

신경순 한국만화가협회 사무국장은 만화지망생 분위기를 좀 더 단적인 예로 설명했다.

“지난 1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키즈촌애니틴스쿨에서 초·중·고 학생 대상으로 만화 작법을 강의했어요. 만화 스토리를 써보라 했는데, 10명 중 8명꼴로 등장인물에 카즈미, 야자와 같은 일본 이름을 붙였더라고요. 요즘 젊은 작가들도 마찬가지예요. 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일본만화 키드들이에요.”

대박 없는 성공

이렇게 일본에 간 한국 만화가들은 어떤 성과를 거두고 있을까. 스퀘어에닉스 출판부 이현석(36)씨는 한국 만화가와 일본 출판사를 이어주는 에이전트 역할을 하고 있다. 스토리작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일본 출판사들이 한국 작가를 찾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초식남과 저출산 때문이에요. 일본 3대 만화잡지 주간 발행부수가 80년대의 절반이에요. ‘소년점프’는 최대 653만부에서 300만부, ‘소년매거진’은 436만부에서 200만부, ‘소년선데이’는 100만부 밑으로 추락했어요. 대신 2000년대 들어 중소규모 잡지가 대거 등장해 만화가 수요는 늘었는데, 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젊은 세대에 무력감이 확산되면서 고된 만화작업에 뛰어드는 일본인이 많이 줄었어요. 한국 작가들의 열정과 헝그리정신이 빈틈을 메워주는 거죠.”

일본 진출은 보통 이런 식이다.

“기성작가는 에이전트를 통해 먼저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거나 출판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습니다. 신인은 만화 콘테스트에 출품하거나 직접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평가받죠. 일단 연결이 되면 출판사 편집자들과 팀을 이뤄 철저히 공동작업을 합니다. 기획부터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편집자들이 개입해요.”

성공한 작품도 많다. 이현석씨가 스토리를 쓰고 이유정씨가 그린 ‘군바리!’는 주간 100만부 이상 발행하는 ‘영 매거진’에 연재됐다. 주간 100만부는 메이저 매체임을 뜻하는 상징적 발행부수다. 박성우(그림) 임달영(글)의 ‘흑신’은 격주간지 ‘영간간’에서 인기를 끌어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양경일 윤인완씨는 3대 만화잡지 ‘소년선데이’에 ‘디펜스 데빌’을 연재하고 있다.

박무직씨는 한국 조폭을 소재로 한 ‘선캔락’, 송지형씨는 할리우드식 액션을 구사한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로 주목받고 있다. 교토 세이카대학 만화학과,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교, ‘북두의 권’ 작가 하라 데츠오 같은 유명작가 화실 등에는 한국인 만화가 지망생도 상당수 있다.

이렇게 성공한 만화가 작품은 국내로 역수입돼 출판된다. 그러나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이 국내시장에 몰고 온 ‘팽창 효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만화계의 ‘메이저리그’에서 역수입된 작품 판매량도 국내 인기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건 왜일까.

“아직 박지성 같은 초대형 성공작이 나오지 못한 거죠. 한국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진짜 성공작이 되려면 주간 200만부 이상인 ‘소년점프’ ‘소년매거진’에서 인기 순위 10위 안에 장기간 머물거나 단행본을 초판 30만부 이상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진출은 이제 교두보를 마련한 거예요.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죠.”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