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위동 어린이 성추행 그 후… “은지, 다음달 다른 동네로 이사 가요”

입력 2010-04-08 17:51

“은지에게 다음달까지는 이사 가기로 약속했는데, 드디어 이 동네를 떠나게 됐어요.”

지난 1일 수화기 너머 은지(가명·9·여) 엄마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당하고도 못 떠난 동네…가난이 두 번째 추행’(3월 19일자 12면) 기사가 본보 And에 실린 지 2주 만의 통화였습니다.

서울 장위동에 사는 초등학생 은지는 학교로 가는 아침마다 지난 1월 성추행당한 ‘그곳’을 지나야 합니다. 매일 마음의 상처와 대면하는 딸을 보면서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인 은지 부모는 방값이 싼 동네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임대아파트를 신청했지만 떨어졌고, 올해도 ‘커트라인’에 못 미쳐 희망이 없었습니다.

은지 사연이 알려지자 성북구와 동사무소가 움직였습니다. 취약계층 긴급주거지원제도를 통해 은지네를 도울 수 있는지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이 제도는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수급권자인 은지네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작은 틈이 있었습니다. 이 제도의 지원 사업 가운데 ‘매입 임대주택’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직접 집을 구입해 수요자에게 나눠줍니다. 수요와 공급이 늘 일치할 수 없어 가끔 빈집이 생기고, 이런 재고를 해결하느라 아주 드물게 수급권자에게도 기회가 옵니다.

마침 재고 물량이 성북구에 한 채 배정됐습니다. 성북구가 파악한 긴급주거지원 대상자는 은지네 외에 한 가구 더 있었지만 그분은 1인 가구였습니다. 배당된 다가구 임대주택은 2∼3인 가구용이어서 은지네가 다음달부터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기적은 계속됐습니다. 서울 고척동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여종훈(53)씨는 “은지 부모님께 일자리를 드리고 싶다”고 연락해왔습니다. “이제 살아갈 힘이 생겼다”며 은지 엄마는 고마워했습니다.

제도의 틈을 비집고 도움의 손길은 은지에게 닿았습니다. 다음달부터 은지는 등하굣길에 ‘그곳’을 지나지 않아도 됩니다. 은지 엄마는 거듭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신 여러분께 국민일보도 감사드립니다. 주변에 또 다른 ‘은지네’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요.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