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아니라 항공모함이지 안무섭냐고? 그러려니 해… 긴장의 땅, 백령도는 지금

입력 2010-04-08 18:56


6일 오전 8시 인천연안부두 여객터미널. ‘파도 높아 인양작업 중단.’ TV 뉴스를 들으며 승선했다. 지난달 26일 침몰한 천안함이 가라앉은 그곳, 백령도로 가는 길이다.

“짙은 안개로 출항 대기.” 안내방송이 나온다. 낮 1시까지 ‘대기’ 상태가 지속되면 그날 배는 없다. 사흘 이상 배가 뜨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파도와 안개가 문제다.

다행히 ‘대기’ 방송은 한 차례로 그쳤다. 8시50분 출발. 파도는 예상보다 거칠다. 2층 객실 창문을 수시로 덮치며 놀라게 한다. 팔과 다리에 힘을 꽉 준 채 출렁거리는 뱃길을 버틸 수밖에 없다. 5시간이 걸려 오후 2시쯤 백령도 용기포항에 닿았다.

북위 37도 52분.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 섬이다. 인천에서는 220㎞가 넘는 거리에 있는데, 북한 땅 장산곶(황해도 장연군)까지는 17㎞에 불과하다. 배로 30분이면 북한 땅이다. 장산곶에 위치한 북한 비행장에서 전투기가 뜰 경우 3∼4분 내에 백령도까지 날아온다.

오지 중 오지지만 군사적 중요성은 매우 높다. 이곳에 주둔한 해병대 흑룡부대 정훈참모 손상호(36) 소령은 백령도를 “북한의 목에 들이댄 비수”라고 설명한다. 백령도에서 북한군 동향을 관찰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조기경보기지 역할을 한다. 백령도에는 해병대뿐 아니라 육·해·공군이 다 들어와 있다.

북한은 백령도를 눈엣가시처럼 여길 수밖에 없다. 북한도 백령도 맞은편에 상당한 규모의 군인과 화력을 배치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 총구를 겨눈 바다 한가운데에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져 있다. 이 NLL이 한반도의 뇌관이다.

지난 1월 말 북한은 백령도 인근 NLL 해역에 포 400여발을 쏘아대며 사격훈련을 했다. 북한이 우리 쪽 해역을 향해 포 사격을 가한 것은 처음이다. 손 소령은 “포탄의 양도 많지만 NLL 항행금지구역에 정확히 명중시킨 것에 더 놀랐다”며 “북한군 사격 능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백령도 아래 대청도에서 대청해전이 있었다. 1·2차 연평해전 역시 백령도와 그리 멀지 않은 연평도에서 벌어졌다. 지금 섬 남쪽에서 2.7㎞ 떨어진 해상에선 천안함 인양 작업이 진행 중이다. 손 소령은 “북한이 국지적 도발을 한다면 여기(백령도)가 제일 만만할 것”이라며 “남북 긴장을 고조시키는 지렛대로 백령도를 택하기 쉽다”고 말한다.

백령도에서 ‘분단’이나 ‘휴전’은 죽은 단어가 아니다. 실존하는 현실이다. 인근 바다 위에서 교전이 일어나고, 밤에 포 소리가 들린다.

의외로 평온한 사람들

천안함 침몰 소식이 전해지던 날, 백령도 집집마다 전화벨이 울렸다. 섬 바깥에 사는 가족 친지 친구들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진촌리에 사는 전직 공무원 서광훈(67)씨는 “아는 사람 열 중 아홉이 전화했다”며 “다들 빨리 나오라고, 거기 있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하느냐고 성화였다”고 전했다. 며느리와 손주들도 하나같이 “나와서 사시라” 권유했다. 백령도 토박이 서씨는 “지금까지 여기서 별 일 없이 죽 살아왔다”는 말로 모든 걱정을 밀어냈다.

우체국 직원 이순자(50·진촌리)씨는 “태국에 사는 친구한테서까지 전화를 받았다”며 “안 무섭냐, 이사 나와라 하며 난리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씨 역시 태연하다.

“어릴 때는 북한 비행기가 와서 학교 운동장 위를 돌다 갔어요. 어렸을 때부터 늘 그랬으니까 무슨 일이 나도 별로 놀라지 않아요.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죠.”

외부인 시선으로 보면 백령도 주민들의 평온은 이해되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여기서 사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약속이나 한 것처럼 태평하다. 긴장도 반복되면 일상이 되는 것일까.

백령초등학교 강동욱(56) 교장은 인천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처음 이 섬에 왔다.

“가끔 포 사격 합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밤에 들려요. 전쟁이라도 났나 싶은데 아침에 보면 해병대 훈련이었다고 하더군요. 여러 번 겪다 보니까 면역이 생겨 그런지 요즘은 포 소리 나면, 사격하나 보다, 그럽니다.”

주민들의 걱정은 북한이 아니다. 생업이다. 어민들은 이달 중순부터 까나리 잡이를 시작해야 한다. 1년 수입이 거기 달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천안함이 가라앉아 있는 곳이 까나리 어장에 포함돼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울 수밖에.

관광산업도 비상이다. 이 섬의 주수입원은 관광객이다. 백령도에는 효녀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있다. 1999년 심청각이 준공돼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았다. 북서쪽 포구 두무진은 절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관광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이곳 여행사 사장은 주민이 걱정하고 있으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얘기를 들려줬다.

“만약에 이번 사고가 북한 공격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백령도 말로 ‘변’ 나는 거예요. 나도 짐 싸야지 뭐. 관광 끝난 거니까.”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근데 정작 대한민국 사람들은 둔감하다. 백령도 주민들도 그렇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발한다면 그곳이 백령도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평온하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인지, 이유를 알기는 어려웠다.

안개 속의 삶

백령도 총면적은 46㎢. 서울 여의도의 다섯 배쯤 된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이다. 서광훈씨는 “원래는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이었는데, 38선 갈리면서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으로 바뀌었고, 1970년대에 인천시로 편입됐다”며 “아마 통일 되면 다시 황해도로 편입되겠지”라고 말했다.

6·25전쟁 전까지 백령도는 황해도 생활권에 속했다. 전쟁 중에는 북한에서 피란 내려온 사람들이 다수 정착했다. 그래서 그런지 백령도 사람 말투엔 북한 사투리가 섞여 있다. “씨엄히(굉장히)” 같은 낯선 부사들이 통용되고, “어떻게들 나왔시까?” “운영을 하갔다” 등 어미가 독특하다.

백령도는 반군반민 사회이기도 하다. 주민이 4500여명 되는데, 그 숫자만큼 되는 군인 및 군인가족이 살고 있다. “군인들 없으면 농사짓지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군의 대민지원도 활발하다.

산들이 섬을 둘러싸고 그 안에서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 섬 둘레는 철책선이 둘려 있다. 바닷가마다 ‘용치’(간첩선 접근을 막기 위한 시설물)라고 불리는 뾰족한 쇠기둥이 빼곡히 박혀 있다. 백령도는 마을이자 군사기지인 셈이다.

학교마다 동네마다 대피소(방공호)가 마련돼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주민들은 1년에 한 번 사격대회도 갖는다. 여기에는 여성들도 참여한다. 국내 최초로 여자지원예비군 소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여자예비군으로 활동하는 보건소 직원 김금순(50·진촌3리)씨는 “1년에 8시간 군사훈련을 받고, 실탄으로 사격 연습도 한다”고 했다. 손상호 소령은 백령도를 ‘불침항공모함’(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에 비유한다. “민과 군이 섬이라는 한 배를 타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다.

백령도의 봄은 해무(海霧)로 유명하다. 안개가 지독할 때는 시야가 채 1m도 확보되지 않는다고 한다. 배가 뜨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 막막한 공간 속에서도 주민들은 씨를 뿌리고 그물을 손질한다. 안개는 걷히기 마련이다. 이 섬에 깃든 팽팽한 긴장감이란 어쩌면 봄날의 해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섬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백령도=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