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말썽꾸러기 염소와 함께

입력 2010-04-08 17:36


염소 시즈카/다시마 세이조 지음·고향옥 옮김/보림

화가, 설치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저명 작가 다시마 세이조(70)가 쓰고 그린 염소 이야기다. 작가가 예전에 자신의 집에서 길렀던 하얀 염소 ‘시즈카’에 얽힌 기억들을 더듬어 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말 못하는 짐승과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슬라이드처럼 다가온다.

나호코의 집은 도시 변두리에 있다. 어느 따스한 봄날 나호코의 엄마 아빠가 몸이 새하얗고 귀여운 아기 염소 한 마리를 데려온다. 아기 염소는 나호코 가족과 금방 친해지지만 이만저만 말썽꾸러기가 아니다. 줄을 풀어놓자 밭으로 내달리고, 동네 할아버지 집 방안으로 뛰어들어 밥상 위에까지 올라간다. 소동이 일어난 뒤 나호코는 아기 염소를 묶어 놓았고, 아무리 울어도 줄을 풀어주지 않는다. 아기 염소가 “매애∼, 매애∼” 시끄럽게 울어대면 나호코도 아빠도 엄마도 “조용!”하고 소리친다. 아기 염소가 일본 말로 ‘조용함, 고요함’을 뜻하는 ‘시즈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다.

쑥쑥 자라 힘이 세진 시즈카는 이듬해 가을 이웃 동네 염소와 짝짓기를 하고, 시간이 흘러 새끼 뽀로를 낳는다. 하지만 시즈카는 뽀로와 헤어져야 했다. 어느 정도 자란 뽀로를 나호코의 큰아버지가 키우겠다며 데려갔기 때문이다. 젖을 빨던 뽀로가 떠나자 시즈카는 젖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아빠가 젖을 짜려고 애쓰지만 시즈카가 버티는 바람에 번번이 실패한다. 시즈카를 기둥에 꽁꽁 묶고 젖을 짜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시즈카는 어미가 된 후 듬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뽀로가 떠나간 후 다시 예전의 사고뭉치로 돌아온다. 묶어 놓은 줄이 끊어진 틈을 타 강 건너 할아버지네 밭으로 간 시즈카는 어린 양배추를 스물여덟 개나 먹어치우고, 할아버지네 집 표고버섯을 열여섯 개나 훔쳐 먹는다. 밭에서 자라고 있던 토마토도 가만 두지 않는다.

작가는 지금도 도시 변두리에서 밭을 일구고, 염소와 닭을 기르며 살아가고 있다. 강렬한 필치로 그려진 원색의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두툼한 그림책은 독자들을 자연과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