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 50년 보좌한 최창근 장로(97)의 헌신 인생

입력 2010-04-08 17:06


[미션라이프] 올해는 일평생 기독교 교육과 사회봉사에 헌신했던 고 한경직 목사의 소천 10주기다. 위대한 지도자 뒤에는 늘 충성스런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최창근(97) 영락교회 원로장로는 한 목사의 ‘오른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장로는 한 목사가 비전을 제시하면 강한 추진력에 수백억원 대에 이르는 재정을 투입해 그것을 현실화시킨 주역이다. 1960년대 섬유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최 장로는 한 목사가 제안한 교육사업과 기드온협회, 사랑의쌀나누기운동, 실로암안과병원 설립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도 양수리 자택에서 백수(白壽)를 2년 앞둔 최 장로를 만났다.

-고령에도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몇 해 전 왼쪽 무릎 관절수술과 척추수술을 하고 나니 거동이 불편해요. 집안에서도 2개의 지팡이를 짚고 다닙니다. 그래도 매주 주일 오전 10시면 아들 자가용을 타고 서울 영락교회로 향합니다. 이젠 아는 교인 중 먼저 하늘나라로 간 분들이 더 많아요. 너무 오래 산 것 같아요. 허허.”

-올해 한 목사님 10주기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한 목사님과는 1947년 첫 만남을 갖고 50년 넘게 섬겼습니다. 그 어른은 정말 애국심이 강한 분이셨어요. 그분은 늘 우리나라가 바로 되려면 기독교 정신을 철저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이 일제에 수난을 당했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젊은이들이 국가에 관심을 갖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재산을 기부하신 겁니까. 일례로 76년 영락고등학교 건축 당시엔 4억원이라는 큰 돈을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한 목사님의 선교사업을 돕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목사님도 선교계획을 구상하면 늘 저를 불러 재정문제와 실제적 행정을 상의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재물은 주님이 참 기뻐하실 일에 쓰고 가는 것이 교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 동석한 최 장로의 장남 인석(69)씨는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회사가 부도가 난 뒤 서류를 정리하면서 부친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아버지는 한번도 재산을 헌납하면서 가족들과 상의하지 않았고 가족들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면서 “남들은 우리 집안이 돈이 엄청 많아서 일부를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오해다. 사실 아버지는 전부에 가까운 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엔 27만4400여㎡(8만3000평)나 되는 땅을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ACTS가 학내 문제로 복잡합니다.

“아신대는 규모면에서, 의의 면에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업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 따라 ‘아시아 복음화를 실천할 지도자 양성’이라는 막중한 비전과 사명에 공감해 큰 기대를 갖고 재산을 내놨고 30년간 전폭적으로 모 목사님께 맡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모 목사님이 스스로 설립자를 자처하며 학교를 사유화하고 있다고 해요. 세상에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교수들도 문제입니다. 학교에 주인이 없으니 일부 인사들이 사심을 품은 결과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 기독교인은 그저 하나님의 백성이니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 소유로 뭘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소유가 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돌려드림으로 얻는 기쁨과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동안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이 적힌 액자는 수도 없이 봐왔다. 하지만 최 장로 자택에서 본 액자만큼 그토록 준엄한 느낌을 준 적은 없었다.

양평=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