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은혜 (5) 손정도 목사 시무교회서 성가대 활동
입력 2010-04-08 17:23
본과 1학년부터 각 교회 성가대로 파송되는데, 나는 시아버지인 손정도 목사님께서 시무하셨던 정동교회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시어머니와 남편 손원일 제독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만남을 연결해준 분이 사촌 언니였다.
당시 어머니는 장남인 원일씨가 결혼을 못해 사촌 언니에게 근심을 털어놓으셨다고 한다. 이에 언니는 나를 떠올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동교회에서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자며 어머니를 초대했다. 물론 나는 미래의 시어머니께서 며느릿감을 보기 위해 예배에 참석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성가대석에 앉아 예배를 마친 뒤 저만치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촌 언니를 향해 다가갔다.
그 옆에 곱게 단장한 분이 활짝 웃으시며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의아했지만 그땐 그냥 넘어갔다. 후에 어머니가 그날의 상황을 들려줬다.
“너를 보러 정동교회에 갔을 때, 네 얼굴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성가대석에 앉아 있는 처녀들의 얼굴을 천천히 보고 있었지. 그런데 유난히 한 처녀가 내 눈에 들어온 거야. ‘저 아가씨라면 우리 원일이와 딱 어울릴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예배를 마친 뒤 바로 그 처녀가 내게 걸어오는 게 아니겠니? 내가 얼마나 놀랐겠니? 그 아가씨가 바로 너였단다.”
그날 어머니는 사촌 언니에게 내가 마음에 쏙 든다며 당장 두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이에 나와 함께 이화여전에 입학한 미래의 시누이 손인실이 다음 주일에 오빠인 원일씨와 함께 정동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대학 입학식 날, 우연히 손정도 목사님과 그분의 딸인 인실씨에 대한 얘기를 듣고 궁금했던 때였다. 그런 인실씨가 나에게 오빠를 정식으로 소개해준 것이다. 첫인상은 다소 무뚝뚝해 보였으나 준수한 용모와 굵직한 음성을 가진 모습에 믿음이 갔다. 아버지에게도 원일씨를 소개했다. 아버지는 “자네 목소리는 100점 주겠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의 우렁찬 태도에 뿌듯해하셨다.
우리 두 사람은 이후 몇 차례 더 만남을 갖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반려자임을 서로 고백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나의 미래를 미리부터 준비해 놓으셨다.
나를 바닷가에서 태어나게 하셔서 바다를 사랑하게 하셨고, 그러면서 바다 사나이를 만나기까지 많은 이들을 만나게 하셨다. 어렸을 때 나는 출렁이는 파도를 보면서 큰 오빠에게 다짐한 게 있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아. 결혼해서도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이다.
내 고향 마산의 바다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는 손 제독과 함께 진해의 바다를 한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았으니, 나의 간절한 소망에 주님께서 응답하신 게 아닐까.
그러나 결혼은 그리 순탄하게 흐르지 않았다. 남편을 만날 때가 겨우 대학 1학년. 의외로 결혼이야기가 급진전됐다. 원일씨로부터 정식 프러포즈를 받은 뒤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깨닫게 됐다. 그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공부는 때가 있는 게 아니던가. 지금이 아니면, 절대로 음악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