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한번도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
입력 2010-04-08 17:36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펴낸 서울대 로스쿨 2학년 김원영씨
서울대 로스쿨 2학년 김원영(28)씨.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지체 1급 장애인이다.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스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이란 희귀 질병을 갖고 있다. 잦은 골절과 반복되는 수술로 인해 그는 여느 아이들과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부상을 우려해 초등학교 입학이 거부되면서 그는 늘 집안 작은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춰있지 않았다. 열다섯 살에 공부를 시작해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경기도 광주 재활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경기도 구리의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2009년 서울대 로스쿨에서 입학해 법조인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푸른숲)는 김씨가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자신의 이야기다. 선천성 장애를 딛고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 그 속에서 겪게 된 어려움과 고민들이 갈피갈피 담겨 있지만 이 책은 장애인 성공스토리나 희망의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6일 서울대에서 만난 김씨는 “장애인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이 ‘장애를 극복한 성공한 장애인’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했다. 장애인 문제를 개인화하거나 재활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시각을 그는 거부한다. “신체적인 손상이 어느 사회에서는 장애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장애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장애는 개인적인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손상된 몸에 부여된 사회적 차별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그는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좋은 사람들 만났고, 주변 여건이 허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는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내 앞에 놓여있는 물리적 어려움이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할 있는 게 아니었지요.”
그는 불굴의 의지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슈퍼 장애인’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고 했다. 대신 장애인에게 무관심한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운동에 힘을 보탰다.
김씨는 사회적 편견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맞서 장애인의 권리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장애인들의 외로운 싸움이 그나마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왔다고 말했다.
“장애는 개인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나는 단 한번도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김씨는 “편견과 모욕 앞에서 ‘쿨’한 척 하지 않고 소외된 욕망이나 잘못된 현실에 대한 분노를 당당하게 표출하는 뜨거운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