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소요 확산… 비상사태 선포
입력 2010-04-08 00:58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전역에 7일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쿠르만벡 바키예프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경찰과의 유혈충돌 속에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비상사태 선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치안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어 바키예프 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형국으로 빠져들고 있다.
수천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이날 수도 비슈케크에 있는 대통령궁 부근에서 진압 경찰과 정면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최소한 17명이 숨지고, 180여명이 다쳤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사망자가 50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몰도무사 콘가티예프 내무부 장관이 전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탈라스시의 정부 건물에서 시위대원들에게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키르기스스탄 내무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또 아킬벡 자파로프 제1부총리를 비롯해 일부 관료들이 시위대에 인질로 잡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 지도자들이 집단 연행된 데 항의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시위대는 대통령궁을 향해 행진하면서 차량들을 전복시키고 검찰 청사 등 정부 건물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시위대는 특히 의회 건물과 국영 TV 건물도 장악한 뒤 독자 방송에 나섰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서나 호텔 등에 난입해 약탈 행위를 하기도 했다.
경찰은 고무탄, 최루탄, 물대포, 섬광 수류탄 등을 쏘며 시위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발포를 시작했다. 경찰 측 부상자도 8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부 나린시와 토마크시에서도 수천명이 시위에 나서는 등 시위 물결은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공공요금 인상이다. 중앙아시아 최빈국인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지난 1월부터 전기요금 2배, 난방비 5배 등 공공요금을 급격히 인상해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
여기에 2005년 ‘튤립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바키예프 대통령 정부의 부패와 무능, 야당과 언론에 대한 무차별적 탄압 등도 시위의 주요 원인이 됐다.
키르기스스탄에서 공군기지를 운영 중인 미국은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러시아 외교부도 정부와 시위대 양측에 폭력과 유혈사태를 피할 것을 촉구했다. 중앙아시아 순방 중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집회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본질적 요소지만, 법치는 존중돼야 한다”고 양측 모두에 자제를 요청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