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 4월 9일 선고 공판… 유·무죄, 공여자 진술 구체성에 달렸다

입력 2010-04-07 18:26


한명숙 전 국무총리 5만 달러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대법원 판례는 피고인이 수뢰 사실을 부인하고 직접적인 증거가 없을 경우 뇌물 공여자의 진술이 믿을 만하고 구체적이어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가 돼야 유죄로 인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9일로 예정된 선고를 앞두고 과거 뇌물 사건 판례를 살펴보는 등 마지막까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7일 알려졌다.

◇사무실 가구 배치까지 기억해 유죄 입증=부하 직원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관련한 편의제공 등 명목으로 500만원을 받아 유죄가 확정된 김효겸 전 서울 관악구청장의 경우 뇌물 공여자인 윤모씨가 당시 사무실 구조를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윤씨는 김 전 구청장에게 뇌물을 건넬 당시 사무실 왼쪽 끝에 책상이 있고, 그 앞에 1인용 소파와 유리가 깔린 탁자 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500만원은 신문지에 싸서 쇼핑백에 넣은 뒤 소파 옆 탁자에 놓고 나왔다고 말했다. 김 전 구청장은 돈 받은 사실을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한 장의 사진을 결정적 증거로 인정했다. 2006년 6월 김 전 구청장이 당시 당선인 신분으로 공무원노조 간부들과 면담하는 사진에서 나타난 가구 배치가 윤씨 진술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뇌물 사건은 아니지만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민주당 이광재 의원 사건의 경우도 비슷하다. 박 전 회장이 이 의원을 만났다고 진술한 당일 구입한 KTX 열차표 영수증과 호텔에서 법인카드로 지불한 식대비 등이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 의원은 박 전 회장을 만난 사실도 없다고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결제한 식대비에 주목했다. 이 호텔은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국회의원의 경우 회원 대우를 통해 식대비를 깎아주기 때문이다. 박 전 회장은 이 호텔 회원이 아니었으나 당시 식대비의 10%를 할인받아 280여만원을 결제했다.

결국 한 전 총리 사건도 재판부가 “총리공관 오찬 후 의자에 5만 달러를 놓고 나왔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진술의 신빙성과 구체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일정 기록한 단말기로 무죄 판단=현대차그룹 계열사 채무탕감 청탁과 함께 2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은 자신의 일정을 기록해 놓은 휴대정보단말기(PDA)가 무죄 확정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모씨는 2001년 7월과 12월, 2002년 4월 각각 5000만원과 1억원을 정부 과천청사와 서울 역삼동의 일식집, 주점에서 가방에 넣어 변 전 국장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PDA를 확인한 결과 뇌물을 건넸다는 당일 변 전 국장은 모두 다른 약속이 있었다. 또 현장검증 과정에서도 김씨가 변 전 국장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고 진술한 일식집과 유흥주점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다.

코스닥 등록 관련 청탁과 함께 3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가 확정된 박광철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박 전 부원장이 이모씨로부터 3만 달러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면서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무죄 판결했다. 이씨의 환전기록이 3만 달러와 일치하지 않고, 관련자가 진술을 번복한 점 등이 무죄 판단의 이유가 됐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