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CEO 리더십-(15) CJ그룹 이재현 회장] 끊임없는 변신·도전정신으로 ‘Only One’ 실현

입력 2010-04-07 21:23


‘온리원(Only One).’

처음(The First)으로, 세상에 하나뿐인(The Differentiation), 최고(The Best)의 제품을 만들자는 정신인 온리원은 CJ그룹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이재현(50·사진) 회장은 매년 신입사원 입문교육 수료식에 참석해 “끊임없이 변신하는 문화가 CJ의 DNA”라고 강조한다. 신규 사업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선 “경쟁사가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의 생각은 옳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르게 CJ식으로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독려한다.

◇‘겸허’가 일궈낸 도전정신=이 회장의 좌우명은 ‘겸허’다. 할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좌우명이기도 한 ‘겸허’를 이 회장은 ‘도전정신’으로 해석한다.

“내가 젊은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주고 싶은 건 겸허다.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항상 ‘나는 부족하다’ ‘목표를 달성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등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기업은 쓰러진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바로 겸허다.”

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독립한 후 1995년 매출 1조7300억원이던 CJ는 지난해 14조4000억원을 기록해 15년 만에 8배 넘게 성장했다. 직원 수는 6800명에서 1만7000명으로 늘었다. 내수 중심의 식품회사로서는 놀라운 성장세다.

◇집념의 승리=이 회장의 첫 인상은 부드럽다. 하지만 사업에선 다르다.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선 거침이 없다. 대표적인 게 E&M(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 이 회장은 95년 4월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설립한 미국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문화산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삼성그룹으로부터 막 독립했을 때로 자산 총계가 1조원대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환율로 23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드림웍스에 투자했으니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외부적으로는 대기업의 영화 진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 부딪혀야 했고, 내부적으로는 누적되는 적자로 커지는 위기감과 싸워야 했다. 이후 15년간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누나인 이미경 E&M 부회장과 함께 남매의 영화사랑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지난해 CJ는 콘텐츠 사업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해운대’는 1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CJ미디어와 엠넷미디어가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 ‘롤러코스터’와 ‘슈퍼스타K’는 각각 시청률 4.73%, 8.47%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CGV는 기존 2D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3D와 4D 상영관의 성공으로 또 다른 사업 가능성을 찾았다. 그동안 적자를 보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이 회장에 대해 ‘집념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입버릇처럼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한다.

◇‘회장님’ 아닌 ‘이재현님’=CJ의 기업문화는 한마디로 ‘자유분방’이다. 대표적인 게 2000년 임직원 간 직급 호칭을 없애고 도입한 ‘님 호칭’이다. 당시 많은 사람이 기업경영과 호칭이 무슨 상관이냐고 의문을 가졌지만 이 회장은 스스로 ‘이재현님’으로 불리며 수평적 기업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해 복장도 자율화했다. 팀별로 출퇴근 및 점심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이 회장은 유연문화에 대해 “개인의 유연성에 그치지 않고 조직의 유연성,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의 유연성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 때문에 사업에 대한 집중도나 큰 흐름을 읽는 눈은 조부(祖父) 이병철 회장을 꼭 닮았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가부장적 카리스마로 그룹을 이끌었다면 이 회장은 ‘합리주의’로 CJ를 이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의 최근 화두는 ‘강한문화’다. 10여년간 유연하고 창의적인 문화를 강조해 왔던 이 회장과는 얼핏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진짜 강한 칼은 마음껏 휘어지지만 부러지지 않는, 그러면서도 힘을 발휘하는 칼이다. CJ가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문화는 내부적으로 유연하면서도 외부 경쟁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문화이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 어느 때라도 변신할 수 있는 문화”라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이 회장은 ‘은둔형’에 가깝다. 공식 행사는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이 주로 맡고 1년에 한번 대통령 주재 그룹 총수 투자 간담회나 호암 탄생 100주년 행사 등 삼성가 모임에만 참석한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도 꺼리는 편이다. 경영자는 ‘실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해외시장 개척-문화가 힘이다=이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내 시장의 캐시카우(현금창출 능력이 뛰어난 사업)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 성장을 위해 과감히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CJ의 해외 매출은 95년 54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4조원으로 늘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에서 30%로 10배 증가했다.

창립 60주년을 맞는 2013년 CJ의 매출 목표는 38조원.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린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올해를 글로벌 CJ를 향한 제2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영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해외 진출을 강조하는 것은 CJ의 창업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과 맞닿아 있다. 기업 활동을 통해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부 증가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으로 대표되는 ‘식문화’와 CJ엔터테인먼트로 대표되는 ‘문화’를 결합해 우리 문화를 해외에 ‘상품’으로서 널리 알리고자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이 회장은 “CJ의 사업 분야는 모두 문화다. 먹는 것도 문화며 영화도 문화다.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 문화가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원천 콘텐츠’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같은 ‘규모의 경제’다. CJ엔터테인먼트와 CJ미디어, 엠넷미디어 등이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자체 콘텐츠 생산을 늘리는 것이나 지난해 국내 2위 유료방송 채널사업자이자 케이블TV 사업자인 온미디어를 인수한 것도 그 일환이다. 향후 CJ를 이끌어갈 신입사원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입사 1∼2년차 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에는 매년 참석하고 신입사원 수료식 때는 직접 배지를 달아준다. 이 회장이 꿈꾸는 CJ는 즐겁게 일하고 기업과 직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무한꿈터’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