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형량 대폭 높아졌는데… 법원 양형기준 안바뀌어 ‘반쪽’
입력 2010-04-06 22:21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법원의 양형기준은 이에 맞춰 수정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조두순 사건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아동 대상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일부 바꾼 수정안조차 확정, 시행되지 못하고 있어 자칫 현행법과 동떨어진 양형기준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높아진 형량, 반쪽된 양형기준=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6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이 법안은 지난 5일 정부로 이송돼 대통령의 서명과 국무위원의 부서(副署) 절차를 거친 뒤 공포된다.
이번 개정으로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의 형량은 대폭 높아졌다. 13세 미만 대상 강간은 징역 7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높아졌고, 유사성교(5→7년)와 강제추행(3→5년)도 법정 최저형이 2년씩 상승했다.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 대상 성범죄 사건의 처벌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반영된 결과다.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된 법률안은 오는 20일까지 공포되고 시행된다. 따라서 공포일 이후 벌어지는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는 새로운 법에 따라 처벌된다. 하지만 개정 법률안이 시행될 경우 현재 적용 중인 양형기준은 법 시행일 이전에 저질러진 범죄에만 적용되는 반쪽짜리 기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양형기준을 정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법 개정 작업을 고려하지 않고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수정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정 법률 공포일 이후 아동을 대상으로 강간 범죄를 저지를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된다. 하지만 현행 양형기준이 권고하는 형량은 감경(4∼6년), 기본(5∼7년), 가중(6∼9년) 등 모든 영역이 바뀐 법률의 하한선보다 낮은 상황이다.
◇양형기준 수정안은 아직도 의견조회 중=양형위는 지난 2월 ‘심신미약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 음주를 감경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과 함께 3가지 유형의 범죄(특별보호구역에서의 범행, 변태·가학적 범행, 다수 피해자에 대한 계속적 범행)를 특별 가중요소로 반영하는 수정안을 만들었다.
양형위는 당시 조두순 사건과 같은 유형의 범죄가 발생할 경우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됐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 수정안은 아직도 재판 실무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기관, 정부부처 등 38개 기관의 의견조회를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양형위는 다음달에 논의를 거쳐 수정안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3가지 유형의 범죄를 가중요소로 반영하는 데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음주감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양형기준 수정안은 이번 법률 개정으로 존재 가치가 사라졌다. 개정된 성폭력법은 음주·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법에 의무적으로 하도록 정해진 법률상 감경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특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