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국치100년은 한국 아닌 일본이 부끄러워해야”

입력 2010-04-06 18:28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2부 낯선 기업, 숨은 가해자

② 일본제철, 철을 녹여 포탄으로


일본 정부도 기업도 외면한 조선인 강제징용 소년들의 유골은 평범한 일본 시민들의 힘으로 봉환됐다. 지난달 2일 홋카이도 무로란시 비영리 조직 센터 회의실에서 만난 ‘무로란 시민의 모임’ 소속 회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30대 청년에서 80대 노인까지 전체 회원 30명 가운데 14명이 취재진과 마주 앉았다.

쌀가게 주인이자 모임 대표 격인 50대의 마스오카 도시조씨가 말문을 열었다.

“국치 100년이란 표현을 올해 처음 한국 언론을 통해 접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한국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일본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반성 없는 일본의 오늘을 꼬집은 마스오카씨는 강제동원 역사와 관련, “기업과 나라는 사죄를 하지 않았지만, 대신 우리가 마음을 다해 유골을 보내드렸다”며 깊이 머리를 숙였다.

시민 모임은 2006년 무로란의 한 사찰에 구연석 등 일본제철 와니시 제철소(현 무로란 제철소) 징용 소년 3구의 유골이 방치돼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홋카이도 전역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추적해온 ‘강제연행·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을 통해서였다.

시민 모임은 그때부터 주민들에게 편지를 쓰고 거리로 나가 모금 활동을 했다. 유골 반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2년간의 활동 끝에 가두모금과 우편송금 등을 합쳐 총 121만7193엔(427건)을 모았다. 그리고 2008년 2월, 세 소년의 유골을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모셨다.

시민들과 담장을 맞대고 있는 신일본제철(일본제철 후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무농약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도미 모리(57·여)씨는 “한국에 같이 찾아가 사죄하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정중하게 공식 문서를 만들어 팩스로도 보내봤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당시 회사와 지금 회사는 다르다’였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지난해 창업 10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하더라”고 말했다. 무로란 제철소는 옛 와니시 제철소에 1909년 첫 용광로가 들어선 시점을 창립 기념일로 삼고 있다.

회원들은 한국 정부의 소극적 자세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재일동포 2세 금상일(49)씨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한 지도 45년이 지났다. 그동안 민주화가 늦어지는 등 여러 사정이 있는 줄은 알지만 유골을 찾지도 않고 그냥 방치해 뒀다는 건 한국 정부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보가 무로란 일대를 취재한 사실은 다음날 지역 일간 무로란민보에 소개됐다. 홋카이도 최북단 사르후츠촌 방문 때는 일본 3대 일간지인 아사히신문 미야나가 도시아키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한국 언론이 강제동원 흔적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 뉴스가 되는 것일까. 전범기업 책임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는 취재진의 말에 미야나가 기자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건투를 빈다”고 말했다.

무로란(홋카이도)=특별기획팀 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