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아직도 출동나간 느낌…” 십자수 보며 남몰래 눈물

입력 2010-04-06 18:12


“아직도 남편이 출동 나가 있는 것 같아요. 단지 전화만 안 된다 뿐이지….”

해군 천안함 침몰 사고로 남편 남기훈 상사를 잃은 지영신(33)씨는 아직도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5일 오후 9시30분 경기도 평택 해군아파트 남 상사의 자택에서 만난 지씨는 축 처진 어깨만큼이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 해군들이야 출동이 잦고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으니까 지금도 배에 있을 것 같아요. 곧 집에 들어올 것만 같아요.”

지씨는 줄곧 시선을 바닥에 두고 입술을 몇 번이나 깨물며 겨우 말을 이어갔다.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는 거죠. 재롱부리니까, 애들 때문에 웃기도 해요.”

지씨네 집 거실에는 막내아들 재준(3)이의 돌을 맞아 찍은 가족사진과 남편의 십자수 작품 등이 가득했다.

“에이∼ 엄마가 기자 누나보다 더 키가 작아. 아주 많이 작아.”

큰아들 재민(12)이는 엄마를 위로하듯 괜히 골려대자 지씨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막내아들은 엄마에게 칭얼댔고, 팬티만 입은 둘째 재현(10)이는 거실을 뛰어다니다 엄마 등에 매달렸다. 세 아들에 둘러싸인 지씨는 절망할 틈이 없어 보였다.

남 상사는 10여년 전 3년간 모은 적금 2000만원을 연로한 아버지께 드릴 정도로 효자였다. 지씨는 적금에 대해 “그냥… 별 거 아니에요. 이야기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아요”라며 말을 아꼈다. 이웃주민과 친척들에 따르면 남 상사의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당뇨병으로 인해 백내장을 앓았고, 어머니도 몸이 불편했다. 이웃주민 A씨는 “지씨가 ‘형편이 어렵더라도 며느리로서 그렇게 해야 된다. 만약 친정아버지가 편찮으셔도 남편이 적금을 드렸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지씨는 남편 의견에 싫은 내색 한 번 안 했다”고 전했다. 남 상사의 큰형이 간암으로 5, 6년 전 사망하자 남 상사가 큰아들 역할을 한 것이다.

“원래는 지난달 31일 천안함에서 내리면 주말쯤 전북 전주에 계신 시아버지 댁에 가려고 했어요. 최근에 시아버지께서 신장이 나빠서 1주일에 3회씩 투석을 받으셔야 했거든요. 저희가 특별히 뭐 남들보다 더 잘하고 그런 것은 아니고요.”

지씨는 남편과 함께 사이버대학 강의를 수강했던 시절이 못내 그립다고 했다. “다음 학기 교양 6과목만 들으면 졸업이었어요.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이와 함께 인터넷 강의도 들었고, 공부도 했었는데 결국 졸업장을 못 받게 됐네요.”

남 상사의 장모인 이모(61)씨는 “요즘 애들 같지 않았다”고 사위를 회고했다. 속정은 깊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한 남 상사가 가끔 술을 마실 때면 전화해 “장모님, 앞으로 더욱 잘 하겠습니다”라고 애교를 부렸다고 말했다.

갑자기 외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재민이가 얼른 자신의 얼굴을 할머니에게 들이밀며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재민이의 행동에 외할머니도 눈물을 참았다. “재민이한테 그랬어요. ‘네가 이제 아빠 노릇을 해야 한다.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고요. 어제는 재민이가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더라고요.”

외할머니는 딸과 외손자들이 해군아파트에서 나가면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를 걱정했다. “딸이 애 키우고 살림만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금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애가 세 명이라 겨우 밥 먹고 사는데…. 해군아파트에서 나가라 말하지 않아도 애들 아빠 흔적이 많아서 여기엔 이제 못 살죠.”

지씨의 친정아버지는 큰딸의 집 장만을 위해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다. 집이 없는 큰딸과 사위가 집을 장만할 때 한 푼이라도 보태주고 싶어서다.

지씨는 자녀들과 기자에게 신혼여행 사진 등을 담은 앨범을 보여주었다. “재민이 재현이는 모르는 사진들이야.” 그는 사진 속 남편 얼굴을 어루만졌다. 지씨와 남 상사는 꼭 껴안거나 손을 잡은 채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앨범 한 귀퉁이에는 청첩장도 있었다.

“아빠다!” 남 상사를 유난히도 따랐던 막내 재준이는 사진을 보자 제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평택=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