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봄우레(春雷)
입력 2010-04-06 17:49
봄 춘(春)의 옛 자형은 풀(艸)과 해(日)와 둔(屯)으로 이뤄진다. 햇빛을 받고 자라나는 풀을 보고 새가 날아드는 형상이다. 屯은 발음에 해당하는 성부(聲部)지만 날개를 편 새 모양이어서 글자 안에 잘 융화됐다.
春 밑에 벌레 두 마리가 있으면 꿈틀거릴 준(蠢)이다. 준동(蠢動)이라는 말이 있다. 벌레가 굼지럭거림을 이른다. 바닥을 느리게 기어 다니는 벌레는 소견이 좁고 사리에 어둡다. 무지한 사람들이 숨어서 일을 획책하는 걸 벌레들의 준동에 빗댄다.
3월 끝까지 추위가 물러나지 않더니 여의도 벚꽃이 평년보다 늦을 모양이다. 차가운 바다에 잠긴 천안함때문에 봄 기운도 망설이는가 보다.
봄에 하늘이 울 때가 있다. 우레가 치는 것이다. 우레는 대기의 방전(放電)으로 일어나는 큰 소리다. 천둥이라고도 한다. 천동(天動)이 변한 말이다. 옛사람들은 하늘에서 북을 치는 것과 같다고 해서 천고(天敲)라는 표현도 썼다.
우레의 본말은 우뢰다. 언제부턴지도 모르게 표기가 바뀌었다. 한자말 우뢰(雨雷)와 혼동할까 봐 그랬는지 모른다. 더 주체적이어야 할 북한에선 어찌된 일인지 우뢰를 그대로 쓴다.
우레는 장마철이나 여름에 많고 봄우레는 드물다. 그래서 봄우레를 신뢰(新雷)라고 했다.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3월5일경) 후에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 방전을 일으킨다.
봄우뢰는 북한에서 좋은 변화의 조짐이라는 의미로 흔하게 쓰인다. ‘조선말 대사전’은 봄우뢰의 두 번째 뜻을 “역사적 사건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일제를 쳐부시고 해방된 새 조국을 안아 올 봄우뢰가 울다”를 예문으로 들었다.
봄소식을 기다리며 잠든 바다에서 우레가 터졌다. 어뢰(魚雷)건 기뢰(機雷)건 ‘우레 뢰(雷)’가 문제가 됐다. 당(唐)나라 원진의 시에 “봄우레 한발에 제비도 놀라고 뱀도 놀라네(春雷一聲發 驚燕亦驚蛇)”라는 구가 있다. 놀란 건 우리만이 아닐 게다. 한반도에 주목하는 나라들도 긴장하고 있을 터다.
중국 민간에 유행한 예언시에 이런 게 있다. “봄에 우레 치고 여름에 큰바람 불면 용이 일어나고 호랑이가 깨어나네(春雷震 夏風巽 臥龍起 猛虎驚)/ 풍운이 한데 모여 창생을 구제하네(風雲會合 救濟蒼生)” 우레 한 발의 후과(後果)로 예언과 같은 변화가 북한 땅에 일어난다면 천안함의 희생은 헛되지 않겠지만.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