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마음의 여행

입력 2010-04-06 17:45


아침에 바쁘게 출근을 하다 보면 “내가 언제 교통카드를 찍고서 지하철을 타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교통카드를 어떻게 찍었는지를 돌이켜 보지만 끝까지 생각나질 않아 포기할 때가 종종 있다. 출근길 걸어가면서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밤 사이에 도착한 핸드폰 문자 메시지도 확인하며, 지하철 안에서는 신문도 봐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매일 너무나 익숙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울 것 없는 상황 속에서 애써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귀찮게 오감을 작동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이나마 짧은 거리를 선택하여 한 걸음씩 잰걸음으로 걷기에만 열중했던 원인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감은 언제 작동하는 것일까.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 있을 때일 것이다. 일이 있어 지방 출장지를 찾아간다거나, 친구와 약속한 만남의 장소로 찾아갈 때에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나 주변 경치, 안내표지판과 교통수단의 생김새 등을 바라보며 평소와는 다르게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기 위한 오감은 빠르고 강하게 작동한다.

몇 해 전에는 터키 여행을 갔었다. 터키라는 나라는 우리와는 너무 다른 이 문화 속에서 독특한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고,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만나는 접점인만큼 오랜 융합의 문화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숙소 밖 거리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놀라 깬 적이 있는데, 이슬람 경전 읽는 소리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나 나올 법한 마을회관의 확성기를 통해 온 동네에 방송되고 있었다. 그들은 무덤덤하게 그 소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카파도키아니, 파묵칼레니 하는 터키가 자랑하는 천혜의 자연경관보다 그날 아침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길거리에 무성하게 나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잡초와 나무가 새롭게 내 눈에 들어왔고, 평소에는 존재조차 잊고 있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으며, 국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색깔의 하늘을 한동안 어지러울 정도로 높이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여행은 하찮은 것도 하찮지 않게 느낄 수 있는 마법의 시간이다.

주변을 보면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 마음이 지치고, 일상에 대해 권태가 느껴질 때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이 또한 오랫동안 자신의 습관으로 만들어진 정형화된 마음에서 떠나보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우리들의 생각과 오감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두지 말자.

햇살 따스한 봄날에, 노란 산수유꽃이 아직 떨어지기 전에,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대지를 향해 두 팔을 벌리는 것으로 여행은 이미 시작됐다.

이혜경 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