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51)

입력 2010-04-06 10:27

짚새기, 고무신 같은 장로가 되세요

목사도 드물고 장로는 더욱 귀한 시대에는, 장로라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일평생 자랑이 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말에 ‘때 빼고 광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겉을 문지르거나 칠을 해서 반짝거리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광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말만으로는 안 되니까 일본말까지 얻어다가 ‘삐까번쩍’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도 역시 ‘광 낸다’는 말과 그 의미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시 우리네 삶의 존재론적 색깔은 무광택의 빛이었습니다. 창호지를 바른 영창은 유리처럼 반짝이지 않았습니다. 청자나 백자는 유약을 발랐어도 안으로 배어 들어가는 은은한 빛이었습니다. 표면을 닦아서 반짝반짝 거리게 하는 광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뭐,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늘 신고 다니는 신발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짚새기나 고무신은 광을 낼래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겸손과 청빈, 섬김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외모를 꾸며 드러내는 광택 대신에 부드러운 선과 수줍은 율동이 있을 뿐입니다.

이 광택 문화 덕분에 수입자유화가 되었어도 외제가 팔리지 않는 게 있는데 그게 구두약이랍니다. 대부분의 외제 구두약은 가죽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반면에 광택을 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구두약은 오로지 광택을 내야만 되는 것입니다. 침을 뱉어서라도 광만 내준다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침을 맞았는데도 좋아하는 경우는 구두를 닦을 때입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교회를 다니건 안 다니건, 목사건 장로건 모두들 구두닦이처럼 자신의 광을 내려고 겉을 문지르고 칠을 하는 가치와 경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침을 뱉어도 좋다. 광만 난다면 만사 오케이다.’ 이런 식으로 삽니다. 이제부턴 이렇게 사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축하의 사람이 결코 되지 않습니다. 축하의 직분도 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비유로 듣지 마시고, 광내고 다니는 선배들, 삐까번쩍하게 요란한 이들의 얼굴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틀림없이, 그들의 그 허세스러운 광 속에 남들이 뱉은 침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남들이 침을 뱉어도 끄떡하지 않는 양질의 두꺼운 가죽을 쓴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 속에서, 광 내기를 포기하고 무광택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짚새기처럼, 고무신처럼 그런 장로가 되세요. 그러면 필경 하늘과 땅에서 큰 축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하고 있을 여러 장로님들의 그 ‘마음’을 축복합니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