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헌법재판소장 “이념·정치적 편향따라 법관이 재판하면 안된다”
입력 2010-04-05 21:45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튀는 판결’을 공개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법원의 사법제도 개선안에 반대한다는 뜻도 밝혔다.
이 소장은 5일 서울대에서 ‘대한민국 헌재의 어제와 내일’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법관이 특별한 소신이나 신념을 바탕으로 사건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은 특별한 편향성을 가진 법관의 법적 실험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일 법관이 이념적·정치적 편향성에 따라 재판한다면 결국 현대판 원님재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가 사전에 배포한 참고자료에는 ‘로또 뽑기나 재수보기 재판이 될 수 있다’는 표현도 있었지만 실제 강연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법관의 양심은 개인적 소신이 아닌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지키는 직업적 양심이라는 설명이다.
이 소장은 “일련의 (튀는) 판결 탓에 사법개혁 논의까지 불러오게 됐다”며 “법관은 공권력을 등에 업고 구체적인 사건을 공정하게 심판해야 하므로 검증된 법리에 따라 예측 가능하고 국민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상고심사부를 통해 대법관의 업무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법원의 사법제도 개선안에도 비판적 의견을 냈다. 그는 “대법원이 법리 해석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정책법원으로 남을 것인지는 국민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내놓은 상고심 제한 논의는 끝까지 재판받기를 원하는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는 대법관 수를 늘리고 장기적으로 대법원을 민사 형사 행정 특허 등 복수의 전문분야 최고재판소로 분할하자는 법조계 일부 주장과 맥이 닿는다.
이 소장은 정치권 일부에서 제기되는 대법원과 헌재의 통합 논의에 대해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며 분명하게 반대했다. 그는 “우리의 바람은 미국 연방대법원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제도의 장점을 종합적으로 받아들여 한국의 헌재가 제3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