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은 ‘단타’ 중… 수시 입출금 가능한 MMF ‘밀물’

입력 2010-04-05 21:31


1년 넘게 주식형펀드에 1억원을 투자했던 김모(61)씨는 2월 초 펀드를 환매했다. 금융시장 불안이 여전해 펀드 투자로는 수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처럼 은퇴자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 생활비를 버는 지인들의 조언도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 했다.

김씨는 환매한 돈을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어뒀다.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생기면 자금을 인출해 짧게 투자하고 빠질 요량에서였다. 김씨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한생명 등 공모주 청약에 참여했고,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가 증시에 상장하자 투자를 하기도 했다. 단타를 친다는 식으로 접근했는데 성적이 꽤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한 시중자금이 단기수익을 좇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저금리로 풍부해진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浮動化)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수익이 난다 싶으면 밀물처럼 밀려드는 탓에 공모주, 스팩, 회사채 시장은 이상 과열을 보이고 있다.

◇주식형 펀드 ‘썰물’…MMF ‘밀물’=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5003억원이 빠져나갔다. 하루 순유출 규모로 2006년 12월 21일(9232억원) 이후 최대치다.

국내 주식형펀드에서는 8일째(토·일요일 제외) 돈이 나가고 있다. 순유출 규모는 1조5337억원에 이른다. 해외 주식형펀드도 22일째(유출 규모 9910억원) 자금이 이탈했다.

주식형펀드(국내, 해외 모두 포함) 설정잔액은 지난해 3월 139조6000억원을 기록한 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부터 이탈 속도는 가속화됐다. 지난달에만 2조7000억원이 썰물처럼 빠졌다.

반면 돈은 MMF로 몰리고 있다. MMF는 수시 입출금이 가능해 단기자금의 ‘쉼터’로 이용된다. 시중자금이 얼마나 단기 부동화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MMF에는 지난달에만 8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밀려들었다. MMF 설정액은 1월 69조원에서 2월 74조9000억원, 지난달 82조3000억원까지 뛰었다. 2일 현재 MMF 설정액은 80조9000억원이다.

금투협 관계자는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부각되는 데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점, 저금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작용 우려 높아져=시중자금은 단기수익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기업공개(IPO) 시장은 연초부터 뜨겁다. 지난달 17일 증시에 상장된 대한생명 공모주 청약에는 일반인 자금만 4조2000억원이 들어왔다. 다음달 예정된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는 5조원이 넘는 자금이 쏟아져 들어갈 예정이다.

스팩은 공모주 청약부터 시작해 증시 상장된 뒤에도 상한가 행진을 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다. 스팩 주가는 금융당국이 증거금률을 올리고 신용융자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서자 진정됐다. 최근에는 투기등급 회사채에까지 돈이 돌고 있다. 투기등급으로 가기 직전 등급이 ‘BBB-’ 회사채 금리는 10.90% 수준의 고금리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한 단기 부동화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 불안정성 심화, 자산가격 거품이라는 부메랑을 우려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저금리가 오래 지속되면 돈을 싸게 빌려 수익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투기자금을 양산하는 효과가 있다”며 “자산가격 거품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