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 ‘2개월 시한부’ 선고 받고도 전시회에 출품 서동관 화백 “아픈 줄도 몰랐죠”
입력 2010-04-05 21:20
“남은 시간은 두 달입니다. 편히 쉬시면서 주변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청천벽력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던가. 한국화가 서동관(60) 화백은 3개월 전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가 쓸개에까지 번져 전체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폐에 물이 가득 차 2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병원의 진단이었다.
“작가로서의 열망,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되돌아보니 허망하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하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다른 욕심 다 버리고 마지막 전시에 참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기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요.”
어느새 두 달이 지나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다. 마음을 비우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기력도 많이 회복돼 손에 힘이 솟았다. “그림을 그리다 마지막 순간을 맞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운명이 아닐까 싶었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을 설득한 끝에 외출 허락을 얻어 붓을 들었어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6일 개막하는 제10회 한국현대미술제(KCAF)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전시를 앞둔 5일 서울 한양대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그는 작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항암치료 중에 틈나는 대로 붓을 잡아 한 달 동안 100호짜리 1점, 20호 2점, 10호 3점을 완성했어요. 그림에 빠지다 보니 아픈 줄도 몰랐죠.” 병마를 이겨내겠다는 불굴의 투지 덕분인지 암세포가 기적처럼 사라져 서 화백은 2주 후에 퇴원할 예정이다.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화가인 이당 김은호의 제자 한유동 선생을 사사한 서 화백은 한국의 산하를 힘 있는 필체와 전통 수묵담채로 그려내는 작업에 30년 넘게 매달렸다. 1975년 덕수궁미술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국내외에서 전시를 가져 호평받았다. 91년에는 독일 통일기념 동서독 문화협회 초대전을 열어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 출품작 ‘산가추정(山家秋情·사진)’에서 보듯 자연에 대한 묘사력이 세밀하면서도 대범한 그의 작품은 특히 일본인 사이에서는 후원자 모임이 발족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 전시도 개막도 하기 전에 작품 주문이 쇄도해 거의 팔린 상태라고.
국내외 작가 100여명의 개인전 형식으로 열리는 이번 KCAF에는 서 화백의 딸 진아(이화여대 한국화과 재학)씨도 참가한다. 다소 추상적인 ‘소나무’ 시리즈를 내놓은 진아씨는 “암을 극복하고 붓을 다시 잡은 아버지와 나란히 전시를 갖게 돼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서 화백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며 “새 생명을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 심혈을 쏟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