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현욱] 美 건보개혁과 한국의 과제
입력 2010-04-05 18:05
지난달 21일 오랜 기간 미국 민주당의 숙원사업이던 건보개혁안이 하원에서 통과됨으로써 미국은 바야흐로 국민건강보험 후진국에서 벗어나게 됐다. 취임 이후 이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던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혜택 대상이 국민의 95%로 확대되며, 3200만명의 미국인이 새로 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이미 상원을 통과한 건강보험법은 이날 하원을 통과했고, 통과 후 하원은 별도 수정안을 만들어 상원으로 보냈다. 상원은 하원 수정안을 25일 찬성 56, 반대 43으로 가결했으며, 하원은 상원에서 돌아온 수정안을 찬성 220, 반대 207로 재가결함으로써 건보개혁법 입법 과정이 마무리된 것이다.
미국의 건강보험제도 도입은 1930년대 초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 시도됐다. 그는 뉴딜 정책을 통해 사회보장법을 시행했으나 건강보험제도 도입에는 실패했다. 1960년대 존슨 대통령은 노령층을 위한 메디케어와 저소득층 및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 제도 도입에 성공했다. 이후 카터, 클린턴 대통령 등이 건강보험 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이러한 오래된 과업을 성공하게 된 것이다.
설득과 타협으로 숙원 풀어
그렇다면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도입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는 오바마 행정부의 개혁 추진 과정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설득과 타협의 리더십으로 건보개혁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이를 위해 그는 전국적으로 9000회가 넘는 국민참여 토론회를 열었으며, 대중매체를 통한 연설을 100회 이상이나 소화해냈다. 또한 초당적으로 의원들을 만나 건보개혁안에 대해 설득했다. 일례로 정부의 낙태 시술을 비판하며 정부의 건보지원금이 낙태 시술에 사용될 것을 반대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지원금의 낙태 시술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약속했다.
둘째는 민주주의 절차의 운용이다. 22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49%는 법안을 지지한다고, 40%는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반대 세력이 많은 법안의 통과 과정에는 많은 논의와 찬반 시위가 있었다. 21일 실시된 본회의장 건보개혁 찬반 토론은 상호 간 비판적 의견 교환으로 10시간이나 지속됐으며 의사당 잔디밭에서도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진정한 미국적 민주주의 덕분일까. 이러한 양극화 상황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나 의사진행 방해는 없었으며, 시위를 막기 위한 공권력 투입은 없었다.
한편 건보개혁안 통과로 인해 한국은 정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될 듯하다. 그 첫 번째는 한·미 FTA 비준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말부터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으며, 신년 국정연설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옹호를 명시적으로 피력했다. 이번 건보개혁안 통과로 인해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적 영향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그동안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이던 의회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이 상당수 의석을 잃을 것으로 전망되나 공화당이 자유무역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므로 향후 한·미 FTA 비준 가능성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FTA·전작권에 좋은 영향
두 번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다. 건보개혁안 통과로 인해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외교적 이니셔티브는 강화됐고 향후 외교정책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동시에 현재 미국 내에서는 전작권 전환에 대한 비판론이 일고 있으며, 따라서 전작권 전환 계획 수정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해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국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외교정책 추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물론 국내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즉 포용과 설득의 방법,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현욱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