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사라진 흰진달래의 경고
입력 2010-04-05 18:05
조선시대의 선비화가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 ‘양화소록’을 남긴 강희안은 우리나라의 꽃과 나무를 아홉 단계로 나누었다. 소나무 대나무 연꽃 국화를 가장 높은 1품, 모란을 2품, 벽오동 석류 등을 3품에 놓았다. 조선시대 이후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온 봉선화와 무궁화는 9품이고 진달래는 6품이다.
치자 해당화 장미 등과 함께 5품에 놓인 식물 가운데 흰진달래가 눈에 띈다. 흰 꽃을 피우는 진달래다. 붉은 홍매보다는 순백의 백매를 훨씬 귀하게 여겨온 것처럼 진달래에서도 분홍 꽃보다는 하얀 꽃을 더 귀하게 여긴 것이다. 역시 선조들은 유난히 흰색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흰진달래는 꽃이 하얗게 피어난다는 점을 빼면 생김새나 특징이 모두 진달래와 똑같다. 지금은 매우 희귀한 식물 가운데 하나지만 예전에는 우리 산과 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던 식물이었다.
흰진달래가 자취를 감춘 까닭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의 욕심이다. 흔한 식물이 아니다 보니 이를 발견한 사람들은 너나없이 캐어갔다. 가뜩이나 개체수가 줄어들던 흰진달래가 산과 들에 남아 있기 어려울 수밖에. 1970년대 이후 흰진달래의 자생 군락지는 완전히 사라졌고, 가끔씩 애면글면 살아남은 흰진달래가 뉴스로 알려지는 정도다.
흰진달래를 포함한 진달래 종류의 식물은 생명력이 무척 강한 편이다. 뿌리가 얕기 때문에 한줌 흙만 있다면 바위틈에서도 자랄 뿐 아니라 황폐한 숲의 그늘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강인한 식물이다. 산불이나 남벌에 의해 망가진 숲에 가장 먼저 들어와 다른 식물이 들어올 수 있는 토양을 가꾸는 역할도 진달래가 한다. 이처럼 야무진 생명력의 진달래가 사라진다는 건 자연 환경의 황폐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명한 신호다.
갈수록 멸종위기 생물은 계속 늘고 있다. 기후 변화를 못 견디는 경우도 있지만 서식지 파괴, 남획, 환경오염 등 사람의 개입에 의해 절멸 위기를 맞는 경우가 더 많다. 생태계가 다양성을 잃으면서 전체 시스템의 균형이 파괴된 자연에서는 사람의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사라지는 생물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옛 사람들이 진달래 무궁화 봉선화보다 아름다운 꽃으로 여겼던 흰진달래가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자연이 바로 우리가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임을 깨달아야 할 식목일 즈음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