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최후의 印紙
입력 2010-04-05 17:57
저작권의 출발은 책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이후 무분별한 복제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저작권은 오늘날처럼 저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출판권자 보호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적재산의 생산을 담당하는 저자에게 권리가 넘어갔지만 지금도 저작권법은 출판자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저자와 출판자의 계약이 인지(印紙)로 나타났다. 1901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도서의 판면란에 저자의 검인(檢印)을 찍은 증지(證紙), 즉 인지를 붙이는 것으로 승낙의 효과를 부여했고 인지의 수로 돈을 계산했기에 ‘인세’라고 불렀다. 그러나 세금이 아닌 만큼 ‘저작권 사용료’가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82년 8월 지석영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에 “서적을 간행하는 자는 그 공적의 정도를 밝혀 주도록 하고… 飜刻하는 것을 금한다”고 밝혀 저작권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 1884년 3월 한성순보에는 “타인이 모방한다거나 허락을 얻지 않고 印出 판매할 수 없으므로, 저술과 번역에 따른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開明된 세상의 道”라고 출판권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신용사회에서 검인제도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지적재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이 늘고 있는데도 인지는 불신의 징표 취급을 받아 생략되는 게 보통이다. 대신 그 자리에 ‘저자와의 협의에 의해 검인을 생략합니다’라는 문구가 붙기도 하지만 그마저 없는 경우가 많다. 그저 럄 ○○○ 정도로 처리한다.
사라져 가는 인지가 책방에서 대량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승려 문필가 법정의 책을 통해서다. 고인의 저작권을 승계한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는 “스님 49재인 이달 28일까지 한 종에 최대 5만장의 인지를 발급하고, 출판사는 7월30일까지 책을 보급하며, 서점은 연말까지만 판매한다”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구와 출판계약의 정신을 존중한 결과라는 것이다.
서점가엔 ‘절판 상업주의’라는 말이 나돈다. ‘죽음의 비즈니스’가 심했다고도 한다. 모두 말을 소유하려 들다 생긴 해프닝이다. 수십만 장의 인지가 한꺼번에 발급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에 고인의 뜻이었을까. 지나간 일이지만 이랬으면 어떨까 싶다. “내 저작권사용료를 맑고 향기롭게 사용해 생전의 말빚을 갚았으면 한다.” 똑같이 수도승처럼 살다간 권정생 선생의 저작권 수익은 그가 사랑한 북한 어린이를 돕는 데 쓰고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