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살아있는 자들의 권리와 책임
입력 2010-04-05 17:53
전도서 9장 4절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전 9:4)
솔로몬 왕은 아무리 용맹한 사자라도, 죽으면 그만이요, 천하고 용맹스럽지 못한 개라도 살아 있음이 낫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절망이요 끝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음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요, 희망과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에서 삶의 고귀성과 살아 있음의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심장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심장경색증 때문에 가슴을 가르고 다리에서 동맥 30㎝를 잘라 심장의 낡은 혈관을 대체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난 그때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 시간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를 개척해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때마다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새삼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러면서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절망이요, 끝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음은 생명이요,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냥 그것으로 끝났으면, 인류는 절망과 고통의 종말 속으로 영원히 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인류에게 구원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전 기도했습니다. “주님 살려만 주신다면 내 피 한 방울이 남도록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붓글씨 성경을 쓰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생명을 연장받은 저는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붓글씨 성경을 두 번째 쓰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붓글씨 성경은 10년 동안 작업해 1992년 출간됐으니 20년 만에 하나님께서 다시 붓글씨 성경을 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살아 있는 민중이었지, 죽은 사람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가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의식과 영혼이 살아 있고,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택함받은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들입니다(벧전 2:9).
시편 89편 48절에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까?”라고 했습니다. 죽음과 음부의 권세에서 건져 줄 이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이 있는 날까지 힘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불가사의를 봅니다. 그들은 나라 없이 2000년을 유랑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유랑을 끝내고 나라를 세웠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영을 받았고, 거듭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방인들의 뜻을 좇아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그쳐야 합니다. 그것은 과거로 족한 것입니다. 우리는 산자들입니다. 거룩한 영으로 살아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태현 목사 (의정부 창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