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 골프(50)
입력 2010-04-05 14:24
사랑의 색안경을 쓰라
몇 년 전부터 나는 골프매너, 리더십, 전략, 캐디 서비스 등을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과거에 유난히 매너만을 강조하는 까탈스러운 골퍼여서 후배들이 나와 라운드할 때는 시험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몇 번의 계기를 통해 나의 태도가 부드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10 년 전 거래처인 S사 P이사와 라운드했다. 그는 외국에서 입문한 명랑 골퍼였는데, 당시 평균타 70대 진입을 목표로 세웠던 나는 무척 진지하게 볼을 쳤었다. 동반했던 후배가 “P이사가 골프를 뭐 그렇게 심각하게 치느냐는 지적도 있었으니 다음에는 대충 편하게 해주시죠”라고 권했다. 그래서 다음 번 라운드에는 골프를 너무 쪼면서 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티샷부터 퍼팅에 이르기까지 거의 프리샷 루틴도, 연습스윙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그냥 쳤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볼이 잘 맞아서 76타를 쳤다. 그런데 그 후 “왜 그렇게 성의 없이 볼을 치느냐?”는 그의 변덕스러운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아진 나는 그와 다시는 볼을 안 친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고교 선배로부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라는 성경 말씀처럼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라운드 하더라도 더불어 화평하게 볼을 치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선배는 매 라운드를 그와의 마지막 라운드라고 생각하라고 강조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왕지사 마지막 라운드이니 유종의 미를 위해 사랑으로 잘 대해 주는 것이 좋겠고, 또 좋아하는 친구와의 라운드라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말을 잘 새기며 사랑의 색안경을 쓰고 동반자들을 쳐다보니 고약하게 여겨졌던 사람들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왕따를 받는 골퍼들도 잘 살펴보면 한두 가지씩 좋은 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 클럽 챔피언인 K사장과 라운드를 하면 그의 골프장 사랑에 감동을 하게 된다. 골퍼들은 흔히 “비싼 그린피 내고 볼 치는데 내 마음대로 좀 하면 안되냐?”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K사장은 골프장 사주보다도 더 골프장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는 큰 내기를 하더라도 플레이 도중 눈에 띄는 담배 꽁초나 휴지 등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벙커에 들어가면 온 벙커를 다 고르게 치워 놓고 밖으로 나온다. 페어웨이에서 보이는 디봇 자국은 카트에 있는 모래로 메우고, 볼을 온그린 시키면 피치 마크를 남의 것까지 모조리 보수하여 놓는다. 그는 홀에서 볼을 꺼낼 때에도 가능한 한 홀에서 멀리 떨어져서 볼을 꺼낸다. 홀 주위가 손상되면 다른 골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그의 골프장 사랑 철학이다. 처음에는 좀 유별나다고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나도 K사장에게 잘 배워서 그처럼 골프장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IT 중견업체 E사의 L부사장은 C골프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회원으로 뽑혔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미소를 짓는 그는 골프장에서 무척 바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고 또 그를 본 직원들이나 캐디들은 빠지지 않고 꼭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캐디를 매우 인격적으로 대한다. 시작하기 전에 캐디에게 누가 오늘의 주빈인가를 잘 알려 주고 캐디를 잘 도와줌으로써 캐디가 주빈인 고객에게 집중하여 정성어린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와 라운드 하는 고객은 1캐디 4백 시스템 하에서도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 라운드 내내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는 “캐디에게 사랑을 베풀면 고객에게 보답이 돌아갑니다”라고 말한다.
골프는 매너의 운동이다. 그리고 모든 매너는 말에서 시작된다. 사랑의 말은 좋은 샷으로 연결되지만 사랑이 없는 말은 종종 트러블 샷을 일으킨다. 좋은 골퍼는 기술이 뛰어난 싱글 핸디캐퍼가 아니라 동반자를 사랑할 줄 아는 골퍼이며, 누구에게도 절대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사랑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동반자의 타수도 줄여준다. 그래서 골프도 제 1의 덕목은 사랑이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4)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