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내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 내몰 수야…” 애끊는 결단
입력 2010-04-05 00:27
천안함 침몰 사고 실종자가족협의회(실가협)가 실종자 구조를 위한 수색을 중단할 것을 군에 요청한 가장 큰 이유는 제2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다. 지난달 31일 해군 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구조 작업 도중 순직한 데 이어 2일 저인망 어선 금양98호가 침몰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된 데다 남기훈 상사의 시신마저 발견되자 가족들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실가협 이정국 대표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인명구조 작업을 중단하고 선체인양 작업을 할 것을 군에 요청했다”며 “여전히 생존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구조에 나선 분들의 이어지는 사고 소식을 보고 듣기 힘들다”고 밝혔다. 한 실종자의 어머니는 “우리 기대 때문에 구조요원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실가협 관계자는 4일 “물론 가족 중에는 ‘물살도 좋아진다는데 수색을 계속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우리 자식을 살리자고 남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실가협 가족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고뇌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백령도 사고 현장의 구조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도 결단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남 상사 시신을 인양했던 해군 해난구조대원에 따르면 천안함 선체 내부가 피폭의 충격과 바닷물 유입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라며 “빠른 조류와 악천후 등으로 하루 중 구조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이 한정돼 있는 등 부정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종자의 생존 한계 시간인 69시간을 넘긴 지도 지난 3일로 닷새가 지났다. 한 실종자 가족은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최악의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함체 인양에 나서면서 군도 안도하는 모습이다. 당초 군은 천안함 사고 발생 이후 구조 작업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실종자 가족과 민주당 등 야당도 군의 초동대응 문제를 질타했다.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군은 조류가 거센 열악한 환경에서 무리한 수색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나 참사만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실종 장병 수색에 계속 매달릴 경우 사건 진상규명이 늦어지고 추가 희생자만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천안함 인양 작업도 미뤄지면서 갖가지 의혹만 증폭됐다.
군 관계자는 “실종자 탐색을 계속할 것이냐, 함체를 인양할 것이냐를 놓고 실종자 가족들의 의사를 최우선 반영했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작업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인 만큼 군에서 이를 존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실가협의 결정에 따라 모든 실종자가 인양될 때까지 장례절차를 보류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절차는 가족들 의견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군은 유족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실가협 측은 이번 구조수색 중단 결정이 결코 구조 포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협의회 언론 담당 최수동씨는 “구조 방법을 달리하겠다는 것”이라며 ‘포기’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당부했다.
평택=조국현 김수현 기자, 노용택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