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직접 만든 십자수… 아내에 선물 할 정도로 ‘애틋’
입력 2010-04-04 21:45
“그토록 갖고 싶었던 오븐, 이번에는 꼭 사줄게.” “정말? 그럼 지금 인터넷 들어가서 오븐 골라도 되는 거지?”
사고 당일인 지난달 26일 오후 9시. 남기훈(36) 상사는 아내 지영신(33)씨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천안함이 침몰하기 22분 전이었다.
지씨는 남편이 오븐을 사준다는 말에 연신 웃으며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아내는 남편과 통화하며 컴퓨터 화면에 뜬 오븐 종류와 가격대를 비교했다. 남편에게 꼭 맛있는 빵을 구워 주리라.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막내 자? 애들이랑 통화 좀 하게 바꿔 줘.” “응 잠깐만. 재준아~.”
지씨는 막내아들 재준(3)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게임 조금만 더 하고. 잠깐만, 잠깐만~.” 막내아들은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엄마가 건넨 전화기를 실수로 끊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남 상사는 천안함 침몰 사고로 바닷속으로 영원히 들어가고 말았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남 상사는 부대 내에서 아내 사랑이 지극한 것으로 유명했다. 2002년 결혼 4주년을 맞은 남 상사는 손수 만든 십자수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십자수로 만든 것이다. 가로 58㎝, 세로 45㎝의 십자수를 보며 아내는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떻게 드레스에 박힌 구슬 간격까지 똑같이 맞춘 거야?” 아내는 돈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그 귀중한 선물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결혼한 지 10여년이 지난 부부였지만 남 상사는 출근할 때마다 아내와 뽀뽀를 했고, 1년에 두 번씩 가족과 여행을 갔다. 막내아들을 출산한 아내에게는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드럼세탁기를 선물했다. 출동이 잦은 해군들이 아내를 살뜰하게 챙겨주기 힘든 여건이었기 때문에 이웃 주민들은 남 상사의 아내를 부러워했다. 천안함을 타게 된 것도 가족들이 좀더 여유 있게 생활하기 위함이었다. 한동안 해군 제2함대사령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남 상사는 아내가 셋째아들을 임신하자 수당이 많은 천안함 근무를 자원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남 상사는 2년 전 사이버대학에 입학, 만학도의 꿈을 키웠다. 낮에 근무하고 밤에는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듣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숙제 준비를 거들었다. 최근 남 상사는 이런 아내가 고마워 술, 담배 살 돈을 아껴가며 모은 100만원을 아내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천안함에서 내리면 꼭 함께 봄옷을 사러 가자.”
지씨는 남편과의 통화가 끝난 지 약 2시간 후 사고 소식을 들었고, 친하게 지낸 이웃에게 전화를 걸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자정쯤 한 군인이 지씨를 찾아와 “남편이 다른 배에 탔으니 안심하라”고 알려줘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그러나 다음날 뉴스를 통해 실종자 명단에 있는 남편 이름을 확인한 아내는 망연자실했다. 이후 실종자 가족 숙소가 아닌 평택시 포승면에 있는 해군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돌본 지씨는 실종자 가족 중 유일하게 자녀들을 초등학교에 등교시켰다. 주민 A씨(45·여)는 “지씨가 ‘남편이 나라를 위해 한몸을 바쳤으니까 울고 싶어도 참아야 할 것 같아요.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애들을 돌봐야죠’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결국 사고 후 8일 만에 남편의 시신이 확인되자 지씨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지난 3일 자택에서 비보를 들은 지씨는 거실에 엎드려 참았던 눈물을 흘렸고, 오열하는 소리는 굳게 닫힌 문밖으로 끊이지 않고 새어 나왔다. 지씨와 이웃 주민들의 울음소리에 해군 아파트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한 주민은 행여 지씨가 쓰러질까 문틈으로 우황청심원을 들여놓았다.
4일 오전 9시30분쯤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남 상사 시신을 실은 헬기가 도착하자 유가족들은 일제히 울부짖었다. “아이고 내 새끼 어쩔까. 내 새끼 어째. 기훈아, 아이고 아들아.” 남 상사의 어머니는 아들 이름을 목 놓아 외쳤다. 흰 천에 덮인 채 싸늘하게 돌아온 아들의 시신을 쓰다듬던 아버지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굵은 눈물만 흘렸다.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남편의 시신을 쳐다보다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낼 뿐이었다.
“이제, 그냥 어쩔 수 없지요.” 남 상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실종자 가족들은 말을 잃어 버렸다. 자신의 가족만은 살아올 것이란 희망을 갖기에 현실은 너무나 잔혹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