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국가 위기관리 구멍…대응 매뉴얼 재점검 시급

입력 2010-04-05 00:31

천안호 침몰 사고 이후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이 구조활동에 우왕좌왕한 것은 물론, 국가적 위기 상황을 수습하고 관리해나가는 과정 역시 실망스러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무엇보다 검증되지 않은 사고 관련 소식들을 각 기관마다 다르게 설명해 혼선을 빚었다. 청와대나 국방부, 2함대사령부, 해양경찰청이 다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들이지만 사전조율 없이 자체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마치 ‘진실게임’을 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일례로 사고발생 시각을 놓고선 국방부내에서조차 장관(오후 9시25분)과 대변인(9시30분), 정보작전처장(9시45분), 해경(9시15분) 등으로 서로 얘기가 달랐다. 또 원인을 놓고서도 사건 초반 군 당국과 청와대 관계자는 “우려할 만한 상황(북한 연루)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가, 사흘 뒤 장관의 국회 출석 답변에서는 “어뢰 가능성이 더 실질적”이라며 북한과 연루된 듯한 뉘앙스를 흘렸다. 원인을 둘러싼 유언비어가 계속 난무하자 정부 관계자는 4일 다시 “북이 직접 개입한 정황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북 연루 가능성에서 한발 물러섰다.

대외적 정보 공개의 수위를 놓고서도 내내 오락가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당초 군 당국은 민감한 ‘안보’ 문제임을 내세워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 자료를 일부만 공개했다가, 의혹이 커지자 전면 공개로 방침을 180도 바꿨다. 또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국방부 브리핑에서도 우리 측 레이더망의 포착 능력 등이 상세히 설명됐고, 초계함 구조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등 기밀이나 안보사항에 대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위기 상황 발생 시 민간 부문과의 협력 범위를 놓고서도 새롭게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초 군은 기밀 누출 등을 우려해 민간 선박 등의 접근을 차단하다가 함미 발견에 시간을 지체했으며, 민간이 보유한 장비에 늦게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구조나 인양을 더디게 했다. 우리보다 더 뛰어난 장비와 기술을 갖춘 미군조차 군 혼자 하기 어려운 부분은 민간 부문과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군 당국뿐 아니라 안보장관회의 등에서 정부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했느냐는 비판도 있다. 청와대 등이 발빠르게 회의를 소집하고, 또 4차례나 회의를 했지만 구조를 위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필요한 장비를 동원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안보장관회의와 별도로 대통령의 지시나 회의 결과를 신속히 실행할 정부 내 위기관리 조직이 제대로 가동됐는지도 재점검할 필요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구조활동과 관련해 군뿐 아니라 정부 내 주요 기관들의 위기대응 매뉴얼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해경 측의 구조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사고 이후 3시간 동안 천안함이 물에 떠 있었고. 모두 침착한 상태에서 구조까지 완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구조에 필수적인 부표는 설치하려 하지 않더라”면서 “군이 이 정도이면 다른 정부조직은 더 준비가 안돼 있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고 한주호 준위 순직이 시사하듯 잠수나 해상구조에 대한 매뉴얼 대신 일선 군인들의 ‘투지’에만 의존하려는 군 당국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현장에 도착한 미 해군이 수심이 40m 이상이고 수온이 10도 이하여서 잠수를 포기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또 구조에 가장 긴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전략적으로 곳곳에 잘 분산돼 있는지도 다시 체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