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율정책 보고서’ 발표 연기 왜?… ‘환율 조작국’ 칼 빼기 전 중국 압박

입력 2010-04-04 19:04

미국 재무부가 3일(현지시간) 환율정책 보고서 발표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강력한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미국과 버티기로 일관하는 중국 간 심각한 갈등 상황 속에 나온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발표 연기를 밝히면서 “앞으로 3개월 동안 열릴 일련의 미·중 고위급 회담이 세계경제를 더욱 탄탄하고 균형 잡히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중국의 유연하지 않은 환율체제가 다른 신흥시장국들의 자국통화 평가절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서 “좀 더 시장친화적인 환율체제가 세계경제의 균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정책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해 왔고, 올해는 오는 15일 발표할 예정이었다.

미국은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부터 나서서 중국 환율문제를 제기해 왔다. 의회에서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에 포함시키라는 공개적인 성명도 냈다. 환율조작국에 포함되면 미 재무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통해 다각적인 국제적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에 포함시킬지는 최대 관심사였다.

미국의 연기 이유는 우선 ‘칼을 빼기 전에’ 좀 더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이트너 장관의 발표가 있자마자 민주·공화당 양쪽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정부가 환율문제에 좀 더 강력히 대응하라는 주문이다. 환율조작국에 대해 무역보복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달 초당적으로 발의한 이 법안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건 미·중 경제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어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조치다. 또 중국이 조만간 환율을 조금이나마 조정할 거라는 신호들도 있다. 가이트너 장관이 “향후 석 달간 고위급 회담”을 언급한 건 협상을 병행해 환율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2∼13일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하는 게 중요하다. 양국 간 환율 대립, 무역 분쟁, 대만 무기 판매, 구글 사태 등이 얽혀 방미 취소설까지 나돌았으나 지난주 중국이 최종 참석을 결정했다. 후 주석의 방미는 최소한 양국이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양국 정상이 환율문제를 포함한 갈등 현안에 대해 어느 정도 해결 가닥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