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파일] 한약과 양약

입력 2010-04-04 17:46


흔히 한약은 양약, 특히 항생제와 양립할 수 없는 약물인 듯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의사들은 양약을 투약할 때 한약을 병용해도 되는지 환자들이 물으면 대부분 말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일본 토야마대 연구진이 소화성 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복합 항생제(아목시실린과 메트로니다졸)와 한약 처방(작약감초탕)을 병용케 한 뒤 추적 관찰한 결과, 항생제에 의해 손상된 장내 정상 세균이 한약 투여로 빠르게 정상화되었다고 보고한 것이다. 이는 한약이 항생제 남용에 의해 손상된 장내 정상 세균의 조기 회복을 돕는 작용을 했다는 뜻이다.

우리의 장속에는 1000종 이상의 세균이 있다. 장내 세균의 총 무게는 1㎏이나 되고, 세균 수는 100조∼1000조로 우리 몸의 세포보다 많다고 한다. 여기에는 우리 몸에 유익한 작용을 하는 유산균도 있고, 별다른 영향이 없는 균, 해로운 작용을 하는 유해균 등이 섞여 있다. 이들 장내 세균은 유익한 효소와 유해한 효소를 동시에 생산하며 장의 신진대사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제프리 웨이서 교수는 장내 세균이 면역계가 최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또 미시간대의 게리 허프네이글 박사는 위장관 내 세균의 불균형으로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이 유발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장내 세균은 이밖에도 항염, 항암 작용에 관여하는 T세포의 활성도 조절, 급성 염증 반응과 건선, 습진, 궤양성대장염, 다발성경화증 등 자가 면역 질환의 발병 및 악화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장내 세균의 균형은 면역 증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장내 세균의 불균형은 장 건강 뿐 아니라 전신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장내 세균의 균형이 깨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항생제의 남용은 그중 한 예다. 실제 복합 항생제를 투약한 후 장내 세균들의 변화를 관찰한 결과, 정상 세균의 30% 정도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다.

장내 정상 세균이 손상되면 유해균에 대한 저항력도 약해져 2차 감염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앞서 예로 든 토야마대 연구팀의 보고는 장내 세균이 한약 성분의 체내 흡수 및 활성화를 도와 이 같은 위험을 줄여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발전시키기 위해 한약에 대한 인식을 더욱 새롭게 해야 할 때다.

송호철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