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노석철] 인당수(印塘水)
입력 2010-04-04 18:09
‘장산곶의 닭 우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는 얘기처럼 북한 황해도 장연군과 17㎞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백령도. 백령도는 육지와 가깝고 대청도와 소청도 등 주변에 섬을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거친 물길로 악명이 높다.
서해에서 밀려드는 바닷물이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로 밀려들며 빠른 유속을 일으키고, 장산곶에 부딪혔다가 다시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를 비집고 서해로 빠져나가면서 거친 물살이 생긴다. 예전부터 거친 풍랑과 소용돌이로 뱃길 사고가 잦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고대소설 ‘심청전’에 등장하는 효녀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도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있다. 옹진군은 1995년 한국민속학회의 고증을 근거로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 바다를 인당수로 확정하고, 인당수가 보이는 백령도 진천리 뒷산에 심청각을 세웠다. 이 지역에서는 심청이 태어난 곳은 황해도 황주, 물에 빠진 곳은 인당수, 심청을 태운 연꽃이 걸렸던 곳은 서쪽 연봉바위로 전해지고 있다. 백령도뿐 아니라 북측 황해도 해안 지역에서는 이런 내용의 ‘심청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그런데 전북 부안군과 전남 곡성군도 10여년 전부터 심청전과 인당수 논쟁에 뛰어들었다. 심청이는 곡성군 오곡면에서 태어난 실존 인물이며, 인당수는 부안군 위도면 임수도 부근 해역이라는 것이다. 중국 상인에게 팔려 곡성을 떠난 심청이가 섬진강을 따라 완도군 금일도에서 대형 상선으로 갈아탄 뒤 위도 부근 임수도 해역에 몸을 던졌다는 게 이 지역의 주장이다. 임수도는 격포와 위도의 중간 지점에 있는 무인도다. 원래 ‘인수도’로 불렀다고 한다. 암초가 곳곳에 솟아 있고, 물살이 워낙 거센데다 안개가 자주 덮여 있어 늘 해난 사고 위험이 도사린 곳이다.
진위 논쟁을 떠나 백령도와 위도 부근 해역은 거친 물살로 뱃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교롭게도 위도 인근 해역도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로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곳이다. 백령도 해역은 또 다시 해군 천안함과 어선인 금양 98호도 삼켜버렸다. 극한훈련으로 다져온 ‘UDT의 전설’ 한주호 준위마저 목숨을 잃었다. 45m 깊은 바닷속에 갇혀 있을 실종자들 역시 생존 가능성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애끓는 심정으로 생환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걸까.
노석철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