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詩] 주 예수 잡히시던 밤에-어느 제자의 고백

입력 2010-04-04 17:27

그날 밤은 별빛도 달빛도

구름 뒤에 숨었더이다.

알지 못할 적막과 우수가

당신 얼굴에 내려앉은 듯하여

우리 열두 사람 역시 말수가 줄어

서로 얼굴만 살피었더니…

결코 예사롭지 않은 만찬인 것은

어렴풋이 알았사오나….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

당신이 내게 떼어 주시던 떡을

무심코 받으면서도

일순간 느껴지던 당신 손의

미세한 떨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늘 온유하시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빛나시던 당신의 눈가에 얼핏 비치던

물기가 무엇을 의미함인지 짐작조차

못하였더이다.

만일 깨달았다면, 당신의 그 결연하고

처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통곡 없이는, 눈물 없이는 그 떡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을.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피로 세운 언약이니-

당신이 내게 베풀던 그 붉은 잔,

진정 무엇을 의미함인지

당신의 말씀을 들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생각해 보았지만

알게 모르게 젖어 오르던

당신의 음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희미한 불빛에 처연하게 비치던 붉은

포도주의 아름다움만 응시하면서…

오, 예수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헌신하셨나이다.

하물며 그 밤에까지 만찬을 베푸시던

그 깊은 의미를 진정 몰랐나이다.

당신의 몸을 다 내어 주시려

그렇게 준비하신 주님….

당신의 피를 다 쏟아 부으시려

그렇게 기도하신 주님…

이제 눈물 없이는

이 떡을 먹을 수가 없나이다.

그 밤의 당신, 그 눈빛이 늘 떠오르므로…

이제 눈물 없이는

이 잔을 받을 수가 없나이다.

‘너희가 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 하시던…

부활하신 당신을 뵈었던

환희와 감격은 너무 컸고

천사의 음성 들리며

승천하신 후에 영생을 얻었음에도

제 가슴은 부끄러움으로 멍들었나이다.

최미경 <오륜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