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변신과 변심, 그리고 변화
입력 2010-04-04 17:57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추억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서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와 ‘원더우먼’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는 국내 콘텐츠보다 외국 영화, 시리즈물에 대한 선호도가 꽤나 높았던 시절이었다. 국내 영상물보다 스케일이 크고 새롭고 훨씬 재미도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막연한 선진 사회에 대한 동경이 작용했던 것 같다.
황금 머리띠를 두르고 갱이나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원더우먼의 화려한 변신. 어리바리한 신문기자에서 지구를 구하고 악한 사람들과 대항할 때면 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변신하는 슈퍼맨. 불의를 보면 치사량 이상의 감마선에 노출되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로 변신하는 헐크. 이들의 변신은 판타지였다.
가까이는 천하장사 타이틀 씨름 선수에서 최고 개그맨 MC로 변신한 강호동, 아줌마 파마에 늘 늘어진 바지를 입고 다니던 친구가 쇼트 커트에 짧은 치마를 입고 여고 동창 모임에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한 그녀의 변신. 일상에서의 변신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 자주 표현되는 단순변심 교환사절, 이수일에 대한 심순애의 변심, 당선 전의 달콤한 공약들을 입성 후에 저버리고 마는 정치인들의 변심. 이런 변심에 대해서는 초심을 잃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해 때로는 배신으로까지 불리기도 한다.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 광고를 위해 자신이 록 가수로 변신한 기사를 봤다. 그의 변신이 흔치 않은 경우라서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하지만 그 행위를 보고 어느 누구도 그의 투자 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바뀌어 변심했다고는 말하지 않을 듯하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는 광고 카피는 마치 여자의 변심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변신과 변심에는 분명한 평가와 애매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도 있다.
부활절을 계기로 신자든 비신자든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 그리고 제자들의 변심을 우리의 삶에 투영해 볼 기회로 삼아본다. 우리의 삶은 변신인가, 변심인가.
방송작가 신우회 모임을 마치고 나온 나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기도의 힘과 신앙의 의지로 뭉쳐진 완전한 변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시 인간의 맘으로 회귀하는 변심을 해야 하는가. 이렇듯 갈등하고 화두로 삼아보는 것도 신앙생활의 일부인 것 같다.
내 선생님 한 분은 ‘삶은 변화이고 산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변화’라고 하셨다. 변신이든 변심이든 변화하지 않고 판에 박힌 삶을 사느니 변화를 즐기겠다. 변화 속에 삶과 생명이 있고 그 속에 삶의 예술이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깨달은 사람은 없고 깨달은 행동만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깨달은 행동이 곧 ‘사랑’이기를 부활절에 소망해 본다. 그것이 곧 다시 태어남(Born Again), 진정한 변화이리라.
김애옥 동아방송예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