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고독·슬픔·열망이 활짝 피다

입력 2010-04-04 17:48


엑스포 앞둔 상하이 ‘2010 한·중 현대미술 교류전’

6월 열리는 엑스포 준비로 분주한 중국 상하이는 꽤 역동적이다. 하늘높이 치솟은 빌딩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는 오가는 자동차와 인파들로 활기차다. 엑스포를 앞둔 지난 2일 ‘2010 한·중 현대미술교류전’이 상하이 중심가의 페이지(FEIZI) 갤러리에서 개막됐다. 벨기에 브뤼셀에도 전시장을 둔 페이지는 세계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글로벌 갤러리다.

‘色視滿發(색시만발)’이라는 주제로 30일까지 계속되는 전시에는 다양한 장르의 한·중 작가 5명씩 10명이 참여했다. 미술전문잡지 ‘퍼블릭아트’ 후원으로 성사된 전시 개막식에는 참여 작가와 상하이의 각계 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어 한·중현대미술 교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色視滿發’의 ‘色視’는 색을 본다는 뜻으로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현대인의 고독, 슬픔, 존재감 상실뿐 아니라 이의 해소를 위해 새로운 이상을 열망하는 시선을 의미하고, ‘滿發’은 활짝 피다는 뜻으로 현대인의 삶의 이미지를 다양한 조형어법으로 표현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시는 두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존재의 가벼움’ 섹션에서는 현실 세계를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안주하지도 못하는 도시인의 허허로움을 표출한 다섯 작가의 작품이 걸렸다. ‘듀얼 누드(Dual Nude)’ 시리즈의 허두오링과 ‘누군가(Someone)’ 시리즈의 지앙용은 충동적이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고뇌를 얼굴이나 신체의 윤곽만으로 표현했다.

자오후아센의 ‘사춘기와의 작별(Farewell to Puberty)-달콤한 꿈’ 시리즈, 빌딩숲의 차가운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현대인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최승희의 ‘도시산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개인의 기억만을 붙든 채 익명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눈과 입 등 얼굴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마스크 작업으로 표현한 손민형의 ‘바람이 부는 곳으로’ 등이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상에의 동경’ 섹션에는 속도와 경쟁의 도시생활에서 인간성 상실, 잃어버린 자존심, 가족애 등을 표현하면서도 치유의 공간을 동시에 제시한 다섯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굵고 가는 선을 중첩시켜 잠재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리우덩의 ‘불꽃 기호(Flame Marks)’ 시리즈, 현실의 허무주의를 문자를 해체시킨 조각으로 형상화한 왕지에더의 ‘현자의 교훈(Sages Sayings)’이 눈길을 끈다.

배라는 사유공간에서 유명 화가들의 이상과 철학을 공유하고픈 꿈을 그린 김영미의 ‘위대한 공간’,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생성된 추상적 공간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우주와 자연, 인간의 상생을 염원하는 이열의 ‘생성공간-변수’, 도시에서 떠나 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김종숙의 ‘인공산수’ 등이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오세인 독립큐레이터는 “고속 성장하는 동아시아 도시민의 아픔과 열망을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바라보게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현대성에서 기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카타르시스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상하이 전시 후 6월 한 달간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전시된다.

상하이=글 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