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미술] 무관심·외면에 고사 위기

입력 2010-04-04 17:24


“전시회를 열면 축하 화분은 와요, 하지만 그 이상의 관심은 없어요.” 기독교 미술작가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과거 미술은 귀족 예술로 인식됐다. 미술 작품을 접할 기회조차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매체 발달로 일반인의 작품 접근이 쉬워졌고, 관심도 커졌다. 이해의 폭도 넓어져 작품을 소장하려는 이들도 많아졌다. 투자 가치도 있다고 판단, 일반인이 작품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기독교 미술은 관심 밖에 있다. 솔직히 기독교 미술전에서 작품이 팔리는 예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저 공짜로 주면 한 점 보관하겠다는 정도. 아무리 성경 내용을 테마로 그렸고, 신앙고백의 표현일지라도 소장에 대한 문의는 없다.

기독교 미술에 대한 무관심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독교 기관에도 다를 게 없다. 20여년 전이다. 기독교 모 기관의 건축 때 기관장에게 부탁을 했다. 건축법에 의하면 건축비의 100분의 2에 해당하는 작품을 설치하도록 돼 있으니 이왕이면 기독교 작품을 써달라고 했다. 하지만 건물에는 기독교와 상관없이 값싼 작품들로 채워졌다. 이 같은 분위기는 조각이나 그림이 우상이라는 잘못된 생각도 작용한다. 또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비싸다고만 인식하는 데도 그 원인이 있다. 예수님의 사역이나 신구약 시대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고 하면 얼마나 귀한 일인가. 또 작품의 가치는 차치하고 재료비만 따져도 사실 터무니없는 고가라고 볼 수는 없다. 작품에 사용되는 물감은 20여만원씩 한다.

이와 더불어 직관적이든 상징적이든 은유적이든 작가의 독특한 취향으로 독자들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는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유럽은 기독교 문화를 유산으로 갖고 있다. 지금은 이 문화가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며, 해당 국가의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된다. 그 이면에는 작가들에 대한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 르네상스시대의 문화를 부흥시킨 그 배후에는 항상 예술의 가치를 알고 지원하는 가문들이 있었다.

독일의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는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요,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라고 했다.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하고 무엇보다 기독교 작가들을 발굴하고 돕는 것에 힘써야 한다. 당장 먹을 게 없어 직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유산으로 남겨줄 기독교 예술 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겠는가.

정재규 목사 (기독교미술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