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광기, 한 아이의 아버지에서 지구촌 아이들의 아버지로

입력 2010-04-02 18:00


함께 울었다. 슬퍼서라기보다 고난을 딛고 다시 일어서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흘린 감사의 눈물이었다. 지난 1일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에서 만난 탤런트 이광기씨. 지난해 11월 일곱 살 난 아들 석규를 신종 플루로 먼저 하늘나라에 떠나보내고, 그는 오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고통의 긴 터널 끝에는 오히려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석규가 축복의 아들 같아요. 아이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됐고, 비로소 제가 해야 할 일을 찾았으니까요. 그래서 감사해요.”

경기도 고양시 벧엘교회에 출석하는 이씨는 2004년 석규가 유아세례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가 조기유학을 떠나면서 그는 게을러졌다. “주일마다 아내가 전화로 교회에 갔다 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럼 갔다 왔다고 거짓말하고… 참 미안했어요.”

한달에 한번 그는 가족을 만나러 필리핀에 갔다. 그럴 때면 아내와 아이들이 출석하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 형편이 어찌나 열악한지, 제가 에어컨도 설치하고 건축비용도 지원했어요. 헌신된 마음으로 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물질적으로 좀 여유로우니 어려운 데 좀 돕자는 그런 정도였으니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나눈다는 게 뭔지, 사랑 실천이 뭔지 그는 몰랐다. 석규와 이별하기 전까지는.

“아이 이름으로 보험금이 나왔는데 도저히 쓸 수 없더라고요. 석규는 7년 동안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갔는데, 아버지인 저도 그런 기쁨을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요. 석규를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보험금을 아이티 구호기금으로 월드비전에 전달했다. 지난 2월 11∼19일에는 아이티에서 구호활동도 펼쳤다. “제가 아이티로 간다고 하자 아내와 딸 연지가 만류했어요. 저는 ‘기도를 하자. 그곳은 나 혼자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여정’이라며 가족을 설득했어요.”

‘아이티에 무엇을 가져갈까’를 놓고 한참 고민했다는 그는 석규가 입었던 여름옷들을 챙겼다. 트렁크에 실은 아들의 옷이 30㎏이나 됐다. 또 석규가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티셔츠 200장을 주문·제작했고, 초콜릿도 샀다. 그리고 이씨는 “석규야, 아빠랑 가서 어려운 친구들 도와주자”며 아이티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고 꼬박 이틀을 날아 아이티에 도착했다. 석규만한 아이들이 일순간 부모를 잃고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저씨도 얼마 전에 너희만한 아들을 잃었어. 너희들이 희망을 놓지 말고 이 순간을 견디면 분명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거야”라며 위로했다. 그리고 준비해간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불과 몇 분 새 석규의 옷들은 아이티의 수많은 아이에게 골고루 나눠졌다. “순간 ‘석규가 진짜 갔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석규와 헤어진 뒤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날 먼 땅 아이티에서 석규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이티 여정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받았다”며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오는 5월 7∼14일 그는 월드비전, 서울옥션과 함께 아이티 돕기 미술품 자선경매 행사도 갖는다. “아이티는 재건하는 데만 20년이 넘게 걸린대요.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렇게 전 세계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며 살려고요.”

2010년 부활절을 맞이하며 그가 한 약속은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파주=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