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시집 ‘살구꽃 그림자’… 현재의 ‘나’를 이끄는 추억의 시간 되짚기
입력 2010-04-02 17:36
‘시간의 시인’ 정우영(50)이 세 번째 시집 ‘살구꽃 그림자’(실천문학)를 펴냈다.
그를 시간의 시인이라 하는 것은 그의 시가 시간 속으로 들어가, 시간을 새롭게 하고, 새로워진 시간과 더불어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시마저도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시인은 스스로 현재의 시간을 거스르는 듯 하다.
“나는 마흔 아홉 해 전 우리 집/ 우물 곁에서 베어진 살구나무이다./ 내가 막 세상에 나왔을 때 내 몸에서는/ 살구향이 짙게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중략) 언젠가 별 총총한 그믐날 밤 나는,/ 가만히 눈 기울여 천지를 살피다가/ 다시 몸 부려 살구나무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이다.”(‘살구꽃 그림자’ 중)
시인은 자신을 ‘살구나무’라 하며,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추억의 공간을 되짚는다. 어린 시절 살던 ‘깡촌’ 고향마을의 풍경을 더듬으며 오래 치매를 앓은 할아버지, 여든이 넘어 초경의 때를 떠올리는 어머니를 비롯해 그 공간의 시간을 살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20년 전 ‘노동해방문학’을 만들며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투신했던 시인은 지천명의 나이가 돼 스스로의 역사를 톺는 셈이다. 그의 시 속에서 형상화되는 시간은 단지 과거를 호출하는데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
“내일을 향해 나는 낡아간다/ 틀림없다, 미래를 향해 손 벌릴수록/ 나는 하염없이 낡아간다(중략)/ 단언컨대 희망은 등 뒤에 있고/ 사라진 기억들이 나를 이끌어간다”(‘창덕궁은 생각한다’ 중)
시인이 치열했던 과거를 넘어 순연해진 과거를 돌이키고,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를 보기에, 발동기에 손을 잡아먹힌 ‘유동 아재’나 쉰내 나는 운동화짝을 벗어놓고 공원에 누운 ‘김개동씨’는 지금 우리가 된다.
양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