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고

입력 2010-04-02 17:29


마태복음 23장 23∼26절

마태복음 23장을 보면서 예수님은 대단한 독설가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위선자, 어리석고 눈먼 자, 회칠한 무덤, 독사의 족속, 저주를 받을 놈들. 이게 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욕들을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24절에 나오는 “하루살이를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자들”이라는 표현입니다. 하루살이처럼 지극히 작은 일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낙타와 같이 거대한 악에는 나 몰라라 외면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예수님의 독설을 읽으면서 통상적으로 제 안에 각인되어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 즉 점잖고, 인자하고, 자비롭고, 미소 띤 모습과 상반됨을 느끼면서 이걸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예로부터 역사의 중심에서 의로운 삶을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처럼 독설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른바 귀한 분들을 향해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독설을 거침없이 토해내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남에게 당하기만 하는 힘없는 자, 병든 자, 짓밟히는 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자비로우셨지만, 이유 없이 남을 억압하고, 군림하고, 욕심에 사로잡혀서 눈이 어두운 상태에 있는 부류들을 보면 분노하다 못해 욕설을 퍼부으셨습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당시 기득권층인 유대교 지도자나 율법학자들은 못 배운, 예의도 없는 무식꾼이요 선동가라고 공격했지만 예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어쨌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예수님의 책망을 요약해 보면 한마디로 저들은 정말 중요한 본질과 주변적인 비본질을 서로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법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안식일은 본래 쉬는 법입니다. 그것도 실은 평생을 쉴 새 없이 일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쉴 권리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쉰다는 그 대전제가 유대인들을 구속했습니다.

안식일은 쉬어야 한다는 단순논리만이 극대화되면서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 아주 무거운 짐이 되었고, 나아가서는 그들을 정죄하고 그들을 완전히 소외시키는 덫의 효과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본질은 사라지고 비본질만이 횡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래 정신을 내세워 그 지엽적인 것으로 본래 정신을 말살한 그들을 향해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메우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사회 안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을 자주 경험합니다. 기득권이 크면 클수록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본뜻을 유린하는 것이 마치 정당한 권리인 것처럼 횡포를 일삼는 현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 바로 하루살이는 거르고 낙타는 통째로 삼키는 자들이라면서 예수님은 불처럼 화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책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을 바라보고 그 본질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해야 함에도 주변적인 것을 물고 늘어져서 예수에게 접근도 못하는 그런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의 본뜻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예수님은 새삼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김광준 신부·대한성공회 교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