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신문’ 조건부 속개는 했는데… 소송지휘권 발동 끝에 진행
입력 2010-04-02 00:2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는 1일 재판장에게 부여된 소송지휘권을 발동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전날 자신이 밝힌 대로 검찰의 신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31일에 이어 이날도 재판 진행 절차를 놓고 잇달아 검찰 및 변호인과 절충을 시도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 오후 늦게 재판을 속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변호인이 검찰의 신문사항 중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질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서를 내고 재판부가 이를 검토하느라 정상적인 재판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검찰의 실질적인 피고인 신문은 오후 7시45분에야 시작됐다.
검찰은 당초 A4용지 22쪽 분량 200여개에 달하는 신문사항을 준비했으나 변호인의 이의제기에 따라 신문사항은 절반 이상 줄었다. 검찰은 한 시간가량 진행된 신문을 통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과의 관계, 총리공관 오찬 상황, 골프채 선물 여부, 제주도 골프 빌리지 사용 여부 등을 캐물었다. 한 전 총리는 그러나 검찰 신문에 한마디도 답변하지 않았다. 재판 뒤,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김주현 3차장검사는 “한 전 총리가 진실을 밝히려는 법정에서 성실하게 재판에 임했다고 볼 수 없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2일 심리를 속개해 변호인 측의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고 이어 검찰의 구형 의견과 피고인의 최후 진술을 듣기로 했다.
재판부는 앞서 변호인이 피고인 신문을 먼저 진행하되 신문 진행 중 검찰이 재판부 허가를 얻어 신문하는 방식, 변호인도 피고인 신문을 하지 않는 방식 등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견이 절충되지 않자 소송지휘권을 발동했다. 소송지휘권이란 소송 절차를 원활하고 정확, 신속하게 하기 위해 당사자 간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에 부여된 권한을 말한다. 형사소송법 279조에는 재판장이 소송지휘권을 갖는다고 규정돼 있다.
오전 중 피고인 신문이 계속 파행을 이어가자 검찰은 일본 고등법원 판례와 형사소송법 개정 취지 등을 근거로 재판장이 검사의 신문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찰은 조은석 대검 대변인 명의로 “공소를 제기한 검사가 피고인을 상대로 질문조차 못하는 재판은 있을 수 없다”며 “진술 거부는 피고인의 방어를 위한 것이지 검사의 입을 막을 권리는 아니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한 전 총리가 검찰의 피고인 신문만을 거부하겠다는 것으로, 진술거부권은 검사의 신문권에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한 전 총리의 아들 박모씨가 미국 이매뉴얼 칼리지 유학을 위해 4만6000달러 이상의 잔액 증명을 제출한 사실을 거론하며 ‘뱅크오브아메리카’에 관련 사실을 조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박씨가 유학 도중 지인의 집에서 숙식을 했다고 밝힌 것과 달리 그의 미니홈페이지에는 이사를 한 내용이 나오는 등 석연치 않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뱅크오브아메리카 계좌를 전부 공개해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제훈 양진영 임성수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