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달라서·잘 몰라서… ‘국제카르텔’ 타깃 한국 기업, 너무 당한다
입력 2010-04-01 21:16
#1. 미국에서 카르텔(가격담합) 혐의가 포착된 대기업 A사는 “경쟁사 임직원과 단순한 가격 확인 수준의 의사를 주고받았다”는 한 언론 보도로 꼬투리가 잡혔다. 경쟁당국이 이를 통해 단서를 잡은 것. 미국에선 동양적 정서에 바탕을 둔 인적관계를 통한 단순 정보교환도 카르텔이 될 수 있다(문화적 차이에 따른 사례).
#2. 이미 여러 국가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던 B사. 이들 국가의 눈을 피해 경쟁법이 없는 동남아 국가에서 경쟁사들과 회합했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자국 시장에 끼친 영향이 인정돼 카르텔 발생지가 어디든 자국 경쟁법을 역외적용받았기 때문이다(경쟁법 범위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사례).
#3. C사는 미국에서 카르텔 혐의로 소환장을 발부받은 뒤 해당 문서를 파기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유죄인정을 받은 후 합의를 했으나 협상의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피해가 더 커졌다. C사는 “위법 증거를 파기해도 한국에선 과태료가 적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절차상의 규칙을 가볍게 생각하면 법정 모독죄로 연결되거나 징역을 살 수도 있다(경쟁당국 조사에 대한 대응이 미숙해 피해가 확대된 사례).
한국 기업이 국제카르텔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에서 주타깃이 되고 있다. 최근 일본 경쟁당국이 삼성SDI에 TV브라운관 가격담합을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미국과 함께 조사를 시작했던 EU도 이르면 연내에 국제카르텔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경쟁당국은 최근 외국에서 카르텔 제재를 받은 기업을 상대로 내부 조사를 벌여 주요 사례를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선진국은 어떤 행위로 제재를 받았는지 등 세부 내용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들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는 괜찮다’ ‘이 정도도 안하고 어떻게 사업하느냐’는 안이한 대처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결과 회사들은 총 1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담해야 했고,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등은 5∼14개월간 영어의 몸이 됐다.
문제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국제카르텔 조사의 주요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과징금을 가장 많이 책정하는 EU의 국제카르텔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카르텔은 미국 등 과거 담합 적발 사례를 인용한 ‘따라하기’ 조사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도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로 꼽힌다. 아직 한 건의 과징금 사례가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본격적인 카르텔 조사가 시작되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란 예측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본은 과징금을 매길 때 가격담합한 상품 매출액의 10%, 미국은 20%, EU는 30%를 추징한다”며 “더욱이 중국 등 개발도상국도 곧장 따라가기식 조사를 실시하면 우리 기업들은 자칫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공정위는 올해 처음으로 이들 경쟁당국 관계자들을 초빙해 현지에서 직접 우리나라 기업을 상대로 설명회를 추진하고 있다. 설명회는 오는 9일 유럽을 시작으로, 5월과 7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하반기에는 인도네시아 등 총 4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