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돈키호테와 돈 되는 일

입력 2010-04-01 17:51


오늘 아침 이것저것 읽을 책들을 챙겨서 방을 막 나서려는데, 책꽂이에서 유독 나를 불러대는 책이 있다. “바쁜데, 왜 부른 거야?”

다른 논문들은 다 제쳐두고 일단 그 책부터 펼쳐보았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나는 우연히 눈에 띈 책을 무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생의 중요한 계시는 언제나 우연을 가장해서 나타나는 법이니까. 물론 현란한 제목과 표지 때문에 힐끗 시선을 사로잡은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어떤 때는 저 구석진 곳에 끼어 있는 바래고 희끄무레한 책이 나를 부르기도 하니까 말이다. 오늘은 무슨 책인가 했더니, 바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였다.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요,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감히’라는 낱말 때문인지 ‘이룰 수 없는’ 때문인지 대책 없고 엉뚱하리만큼 낭만적인 돈키호테의 대사에는 왠지 울고 싶어지는 야릇한 슬픔이 흠씬 스며 있다. 한 수행자의 말씀이 생각났다.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는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용기’이고, 둘째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 ‘평화’이며, 셋째는 두 가지를 구별하는 ‘지혜’라고 한다. 돈키호테가 우스꽝스럽다기보다 서글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늙어서도 세 가지 중 그 어느 하나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의 명대사와 함께 시작한 하루는 오후의 정신없는 대화들에 파묻혀 별다른 연관성 없이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 해질 무렵 인사동 밥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등을 마주대고 앉은 다른 테이블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대화 속에 신기하게도 ‘돈키호테’라는 단어가 귀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요즘은 돈 되는 일 아니면 아무도 생각조차 안 하려 들어. 현실이 이러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대학에서도 돈 되는 공부 아니면 가르치는 것도 미안하고 괜히 죄인 같다니까. 나만 돈키호테 같아.”

그분 말대로 요즘엔 돈키호테처럼 꿈만 꾸다가는 돈 되는 일은 모두 놓치기 십상이다. 냉혹한 경쟁을 준비해야 하다 보니 청년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지레 현명해져 있고, 상대적으로 중년들은 나이에 비해 무모하리만큼 낭만적으로 보인다.

세상 끝까지 별을 따라가겠다는 돈키호테의 대사에 열광해야 할 사람은 이십대여야 할 것 같은데, 그 페이지를 접어놓고 읽고 또 읽으며 눈물까지 머금는 쪽은 나를 포함하여 사오십대이니 어찌 된 일인가. 그날따라 어둑해지면서 바람이 거셌다.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맹렬히 맞서던 돈키호테의 외로운 격투를 생각하면서 나도 바람과 겨루며 집으로 왔다.

이주은 성신여대 미술교육과 교수